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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Oct 27. 2019

최 서기보

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그날은 최 서기의 공직 생활에 있어 일생일대 사건이 발생한 날이었다. 출근길에 저편 횡단보도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함께 큰 충돌음이 들려 왔다. 교통사고였다. 어린아이가 차에 치여 횡단보도에 쓰러졌다. 사고에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었던 최 서기는 사고를 당한 아이에게 곧장 뛰어갔다.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울면서 크게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지만, 마음을 다그쳐 단단하게 정신을 잡으려 애썼다. 침착하게 119 신고, 112 신고를 마치고,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현장을 지켰다. 놀라고 당황한 사람들 사이에서 백면서생 타입의 최 서기만이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조치를 이어 나갔다. 빨리 와야 할 텐데. 구급차가 오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마침내 구급대가 도착해서 다친 학생을 병원으로 옮겼다. 이제 최 서기가 해야 할 일은 끝났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아홉 시 출근 시각을 넘어서 있었다. 그날은 훈련소에서 군사 훈련을 마친 사회복무요원들이 구청에 배치되는 날이었다. 사회복무요원 업무를 맡고 있는 최 서기는 동료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회복무요원들을 잠시 통솔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전화를 끊고 최 서기는 눈을 감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통솔해야 할 병력을 놔두고 교통사고를 수습한 것을 팀장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었다. 박 팀장이라면 좋은 말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최 서기는 구청 청사로 들어섰다. 그날은 최 서기가 공무원이 된 지 3년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이었다.




스물아홉 살, 마침내 최 서기보는 공직에 입문했다. 튀지 않는 성격, 조용한 말씨,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는 패션 감각. 공무원이 되기 전부터 공무원 같다는 말을 들었던 그였다. 동 주민센터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자치회관 업무를 맡았다. 크게 두 가지 일이었다.


하나는 노래교실, 요가교실, 댄스교실 같은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수강료를 받고, 강사에게 월급을 주고, 이따금 제기되는 수강생의 요구를 들어주는 일이었다. 강사, 수강생 모두 대체로 무난했다. 다만 인간 사회라는 게 참 묘한 것이어서 10명이 채 안 되는 수강생들 사이에서도 파벌이 형성되곤 했다. 두 파벌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적인 논란이 이따금 공식적인 민원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이 갈등을 도대체 누가, 무슨 수로 해결할 수 있을까.


다른 하나는 주민자치위원회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매달 위원회 회의가 있다. 회의가 끝나면 위원들, 동장, 팀장과 함께 술을 마신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이름으로 특별한 사업을 하게 되면 이를 회의 안건으로 상정해서 논의한다. 특별한 사업이라 함은 신생아에게 책을 선물하는 북스타트 운동,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내 고장 탐방 프로그램, 장학금 전달과 같은 공익 사업을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회의 안건은 원안 통과된다. 이때 역시 회의가 끝나면 위원들, 동장, 팀장과 함께 술을 마신다.


선 팀장은 최 서기보가 처음 만난 팀장이었다. 그는 업무 욕심이 있었고, 승진 의욕이 있었다. 기왕에 일하는 것이라면 성과를 거두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업무 평가를 받게 되면 평가 기관이 제시한 평가 기준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충실하게 이행해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일을 처리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결정한 사업이라 해도 사업을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일은 모두 최 서기보의 일이었다. 선 팀장은 공직에 갓 입문한 최 서기보로 하여금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계획서를, 사업이 끝난 후에는 결과 보고서를 쓰게 했다. 사업을 시행하는 행사 당일에는 의전과 사진을 강조했다. 사회자가 행사를 진행하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라고 말했는데, 앞에 태극기가 없었던, 그야말로 전설적인 실수를 예시로 들면서 최 서기보의 긴장감을 높이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면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문자를 보내게 했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사업을 알리는 보도자료 역시 잊지 않고 지역 언론사에 보내도록 했다. 기사화된 보도 실적은 모두 스크랩하고 보관하게끔 했다. 실로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처리였고, 물샐틈없는 꼼꼼함이었다. 사업이 잘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일은 모두 주민자치위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 모든 일을 완수하기 위해 최 서기보는 초과근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하고 무던한 성격에,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군기가 몸에 남아 있던 최 서기보였다. 선 팀장의 업무 지시를 놓치지 않고 모두 처리했다. 선 팀장은 그를 총애했다. 업무 외적으로도 선 팀장은 최 서기보에게 호의를 가졌다. 최 서기보 입장에서는 상사와 좋은 인간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마침내 최 서기보가 소속된 동 주민센터는 구청으로부터 ‘자치회관 업무 최우수 동’이라는 평가 결과를 받게 되었다.

“최 서기보, 고생 많았다.”

“모두 팀장님 덕분입니다.”

팀장의 겸손한 자세를 배운 것이었을까. 최 서기보 역시 팀장, 동장, 주민자치위원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최 서기보는 자신의 관운(官運)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입직 후 2년 반이 지나 승진했고, 최 서기보는 최 서기가 되었다. 승진과 동시에 새로운 근무지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구청 민방위팀이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안타깝게도 그의 새로운 팀장은 구청에서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다. 선 팀장과는 달리, 새로운 팀장인 박 팀장은 업무 지시가 체계적이지 않았다. 이제 와 돌이켜 보건대 박 팀장은 업무를 완벽하게 꿰차고 있지 못했고, 성격이 급했다. 그래서 부하 직원에게 폭언이 잦았다. 팀원들은 언제나 그의 심기를 살피며 노심초사했다. 최 서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 서기는 민방위팀에서 사회복무요원 업무를 맡았다. 우리가 ‘공익’이라 부르는 그들 말이다.


사회복무요원 업무 중에서 가장 무겁게, 규정대로 처리해야 할 일이 복무이탈에 관한 것이다. 8일 이상 복무이탈, 즉 무단 결근한 사회복무요원에 대해서는 그를 경찰에 고발해야 한다. 이후 그는 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 법원에서 판결을 받게 된다. 보통은 6~8개월 정도의 징역형 또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거나 징역형을 다 치르면 다시 근무지로 복귀해서 남아 있는 복무기간을 마쳐야 한다.


최 서기가 소속된 구청에는 복무이탈로 법원 판결을 받은 이후 재복무에 응하지 않은 사회복무요원이 다섯 명 있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을 때에는 20대 청년이었지만, 이곳 저곳 주소지를 옮겨 숨어 살면서 어느덧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가는 사람들이었다(훗날 그 중 한 명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는 노숙자 쉼터에 기거하고 있었다). 최 서기는 구청 사회복무요원 담당자로서 이들이 다시금 근무지로 돌아와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끔 해야 했다. 그러나 최 서기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업무를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복무하게끔 강제해야 하는 사회복무요원 다섯 명의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 서기가 소속된 구청은 병무청으로부터 ‘기관 경고’를 받았다. 자치회관 최우수 동이라는 성과를 올리며 우쭐했던 마음도, 관운이 나쁘지 않다던 생각도 모두 사라졌다. 민방위팀으로 자리를 옮긴 지 석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팀장의 심기를 살피며 하루 하루 불안하게 일했기 때문일까. 팀장이 제시하는 업무 방향이 그때 그때 달라서 혼란스러웠기 때문일까. 그렇게 합리화할 수도 있겠지만 핑계일 뿐이라고, 최 서기는 생각했다.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병역법, 병역법 시행령, 병역법 시행규칙,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에 따라 자신의 일을 해야 했다. 게다가 병무청은 점검에 앞서, ‘복무이탈로 법원 판결을 받은 후의 사회복무요원 재복무 처리’를 중점적으로 점검하겠다고 공문도 보냈었다.


‘경고’를 받았는데, 팀장의 심기가 유쾌할 리 없다. 팀 전체의 분위기가 나빠졌다. 나빠진 팀 분위기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자책감은 이따금 업무 실수로 이어졌다. 최 서기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최 서기의 공직 생활에 있어 일생일대 사건이 발생한 날은 그가 공무원이 된 지 3년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초등학생의 병원 이송을 도왔던 바로 그날 말이다. 119 신고, 112 신고를 마치고, 구급대가 올 때까지 사고 현장을 지켰다. 튀지 않는 성격, 조용한 말씨,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는 패션 감각을 가진 그였지만, 공직자로서, 민방위팀원으로서 이 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날은 훈련소에서 군사 훈련을 마친 사회복무요원들이 구청에 배치되는 날이었다. 사고를 당한 학생을 살폈던 최 서기는 출근 시각을 지키지 못했다. 동료 직원에게 전화로 사회복무요원들의 통솔을 부탁했고, 금세 복귀한 최 서기가 이어서 통솔하는 조치가 이뤄지기는 했다. 최 서기의 공백은 15분이었고, 그 공백도 이미 동료 직원이 메웠다. 그렇다 해도 팀장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팀장은 화를 냈다.


출근길에 사고를 당한 학생을 돕는 일은 너의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는 것, 너의 본연의 업무는 사회복무요원을 통솔하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 논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논리 위에 더해진 난폭한 말과 태도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서른한 살의 청년 공무원은 그랬다. 그럼 어린아이가 다친 것을 보고서도 공직자가 출근하던 길을 마저 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입니까. 게다가 재난과 위기를 관리해야 할 민방위팀원이.


마침내 폭발했다. 평소 스스로의 화를 억누르고 사는 사람들이 일시에 폭주할 때가 있다. 그날의 최 서기가 그랬다. 화를 내는 팀장에게 같이 화를 냈다. 평소 팀장의 위세에 억눌려 왔던 불만이 함께 폭발했을 것이다. 언제나 소심한 남자가 대형 사고를 친다. 왜 화를 내십니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목소리를 높이고 앞을 막아서며 따지는 최 서기의 가슴팍을 박 팀장은 강하게 떠밀었다. 사무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놀란 마음에 우는 여직원도 있었다. 억울했다. 최 서기는 사무실에서, 그리고 박 팀장이 보는 앞에서 112에 신고했다. 직장 상사가 나를 때렸다고. 그날의 두 번째 112 신고였다. 서른한 살 청년 공무원의 좌절과는 관계없이, 이날의 일은 구청 직원들에게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가십(gossip)으로 소비됐다.


억울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던 최 서기는 며칠 후 이 모든 사연을 편지로 써서 구청장에게 보냈다. 백면서생 타입의 최 서기가 이렇게 스케일 있게 일을 벌일 것이라 누가 상상했으랴. 편지를 읽은 구청장은 감사과장에게 조사를 지시했다.


박 팀장과 최 서기는 번갈아 가면서 감사과에서 조사를 받았다. 공무원 조직은 이럴 때 보통 양측 모두에게 징계를 준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징계를 받았다. 최 서기는 박 팀장과 같은 수위의 징계를 받은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지쳤다. 박 팀장과 맞서는 일도, 감사과 조사를 받는 일도, 조직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는 일도 3년 차 공채생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침 인사 이동 시즌이었다. 총무과에 인사고충 심사를 청구했다. 인사고충 심사 청구란 ‘내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부서를 옮겨 주세요.’라고 조직에 요청하는 공식 절차다.



심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인사 이동이 한 달가량 남은 시점에서 최 서기는 민방위팀을 떠나기 전에 미진했던 모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출퇴근 시 팀장에게 예의를 다해 인사했고, 점심도 함께 먹었다. 이럴 때 업무 실수가 벌어지면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최선을 다해 업무에 집중하고 정시에 퇴근했다. 팀장 심기를 맞추려는 생각에서 벗어나니, 오로지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이 한 달은 그야말로 최 서기와 박 팀장의 ‘차가운 전쟁’이었다. 기세등등했던 박 팀장도 최 서기를 어려워했다.


‘기관 경고’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복무 중단자 다섯 명을 만나 ‘남은 복무기간의 복무 통지서’를 전달했다. ‘귀하께서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해야 할 날이 남아 있습니다. 구청으로 복귀해서 다시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해요.’라고 알린 것이다. 조회한 주소에 살고 있지 않아서 재복무 통지를 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해서는 해당 주소의 동 주민센터에 ‘거주불명등록 직권 조치’를 요청했다. ‘이 사람은 이 주소에 살고 있지 않으니, 거주지를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분류해 주세요.’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병역법 제89조의 2, 병역법 시행령 제66조,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 제29조․제32조 규정에 따라 처리한 것이다. 담당자가 해야 할 모든 일이 법 규정에 다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었는데, 이 규정을 익혀 규정대로 하는 일이 왜 그다지도 어려웠을까.


마침내 그의 인사고충이 받아들여졌다. 구청 전체의 인사 이동에 맞춰 최 서기는 민방위팀을 떠나 동 주민센터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구청에 온 지 6개월 만이었다.




입직 후 세 번째 근무지로 자리를 옮긴 최 서기는 달라져 있었다. 원래부터 튀지 않는 성격, 조용한 말씨,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는 패션 감각의 그였다. 그는 나이보다 더 노련해져 있었다. 상관의 스타일에 맞춰 일할 필요는 있겠지만, 법정(法定) 사무는 그와는 관계없이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에 따라 엄격하게 일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공무원 본연의 업무이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 만에 하나 상관이 이를 흔들지라도 자신이 확실한 중심을 잡고 일하면 그만이다. 담당자보다 규정을 더 많이 알고 있는 관리자는 거의 없다. 상관이 규정을 잘 몰라서 담당자를 흔드는 것이라면 내가 그 규정을 ‘완벽하게 이해해서’ 잘 설명해 주면 된다. 구청에서 가장 악명 높은 팀장과도 맞섰는데, 이제 무엇이 더 두려우랴.


하극상(下剋上)을 벌였다는 소문이 그에게 꼬리표로 붙게 되었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이 보수적인 조직에서 이런 꼬리표는 사실 치명적인 것이다. 관리자, 고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입사 동기들 가운데에서도 최 서기가 했던 행동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거칠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 감사과에서 조사를 받을 때 조사 담당자로부터 자신의 평판이 좋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최 서기에게 용기를 주었다. 모든 사람들을 다 만족시켜 줄 수는 없으니, 지금까지 한 것처럼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룰 수 없는 문제―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는 일―까지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3년 정도 시간이 흐른 사이, 최 서기보의 첫 팀장이었던 선 팀장은 과장으로 승진했고, 선 과장은 자신이 과장으로 있는 구청 감사과로 최 서기를 불러올렸다. 최 서기는 다시 선 과장 휘하에서 일하게 되었다. 최 서기와 선 과장은 여전히 업무 호흡이 잘 맞았다. 감사과에서도 두 사람은 많은 문서를 생산해 냈고, 많은 행사를 치렀다. 이따금 자신이 조사를 받았던 방을 오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 시절 그 자리에 앉아 조사를 받았던, 초라했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물론 상상 속의 모습이다.


그 즈음에 박 팀장의 모친상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맞서 싸운 것은 사실이지만, 옛 상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가서 조의를 표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박 팀장이 자신을 불편해 할 텐데, 가지 않는 게 그분의 부담을 덜어 드리는 게 아닐까. 고민하다가 박 팀장의 팀원에게 조의금 전달을 부탁했다.


조의금을 전달해 준 팀원이 박 팀장의 말을 전해 주었다. 박 팀장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놈이 의리가 있는 놈이네, 라는 말과 함께. 며칠 후 박 팀장으로부터 모친상에 와 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전형적인 단체 문자 중 하나였지만, 최 서기는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상가(喪家)에 직접 가서 조의를 표하고 손을 잡아 드릴 것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장례식장은 인간관계에서 화해를 제공하는 장소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최 서기가 박 팀장과 만난 일은 없다. 하지만 최 서기의 마음에서 박 팀장에 대한 악감정은 사라졌다. 누군가는 거짓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정말로 악감정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경험은 스스로를 더욱 강하고 노련한 공직자로 단련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지만 않는다면 인간관계에서 영원한 적은 없다. 이제는 서른넷이 된 9급 공채 출신의 최 서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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