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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Oct 26. 2019

책머리에

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9급 공채 합격을 축하합니다.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보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공직에 입문한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각자의 사연이 모두 다르겠지만, 합격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말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이 수험생 시절은 언제 끝날까 하는 막연함, 돈 잘 벌고 있는 친구들 소식을 듣게 될 때 느끼게 되는 초라함, 금전적인 어려움,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 그리고 봄과 가을 저녁에 불현듯 다가오는 외로움…….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 냈으니, 가히 꽃보다 아름답다는 시의 문장이 여러분에게 돌아가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끝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최종 합격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 만만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공채생으로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도 겪고 있고요.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여러분 대다수는 튀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고, 업무 실적 압박을 받으며 일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자신이 맡은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다소 수줍음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회에 기여하겠노라는 소박한 사명감이 있을지언정 명성을 드높여 보겠노라는 야망으로 가득찬 신입 공무원은 많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앞으로 이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명성을 원하지 않고 소박한 행복을 원하는 여러분에게 도전과 야심을 강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책은 신입 9급 공무원들이 성실하게 일하면서, 시민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에 기여하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며, 그러면서도 저녁 여섯 시에 정시 퇴근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여러분의 공직사회 적응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이 책이 필요 없습니다. 조직원 전원이 참석하는 공식적인 1차 회식을 마치고, 소수 정예 주당(酒黨)과도 즐겁게 2차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분들, 그리고 ‘특급 인싸력’을 갖고 계신 분들 역시, 이 책이 필요 없습니다. ‘미움받을 용기’, ‘사랑받지 않을 용기’를 갖고 계신 분들은 지금 바로 이 책을 덮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얄팍한 처세술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의 공직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회식 도중 조용히 사라져서 집에 갈 수 있는 방법, 강경 민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 고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의 처세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처세술을 익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에 더해,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면 더 여유롭고, 더 의미 있는 공직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이, 이 조직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수직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조직이 정부 조직입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전략적으로 행동하고,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고, 상대방을 소중한 인격체로서 존중한다면, 여러분에게 평화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힘든 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이 여러분의 공직사회 적응과 원활한 공직업무 수행, 그리고 마음의 평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9급 공채에 합격한 신입 공채생을 대상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공무원을 직업으로 고려하고 있는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고용 안정성이 높지 않은 현 시점에서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청년과 구직자가 많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시생들은 시험 준비를 결정함에 있어 장기간의 수험 기간을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정말 합격할 수 있을지, 합격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합니다. 현실이 팍팍하다 보니, 공직 업무의 성격을 탐색하거나 일에 대한 흥미를 고려하는 일은 후순위로 미뤄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 책을 통해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부 조직의 문화는 어떠한지, 시민들의 기대와 눈높이는 어느 정도인지 참고할 수 있습니다. 공시생 여러분의 소중한 진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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