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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Jan 06. 2024

석사과정을 끝마치고

예상과 많이 달랐던 대학원 생활

대학원에 합격하고 연고지를 떠나 낯선 지방으로 온지 약 3년이 됬다. 처음에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틈틈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브런치에 글도 쓰면서 알찬 시간을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막상 학기가 시작되니 공부해야할 양이 산더미인데다 수업마다 부여되는 과제도 많아서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었다. 유튜브와 브런치 는 커녕 잠도 제대로 못자는 날이 많았다.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누가 뭐래도 지도교수라 할 수 있다.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대학원 생활의 질을 좌우한다. 일부지만 어떤 지도교수는 대학원생에게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수많은 일을 시키거나, 논문 지도라는 명목으로 폭언과 인격 모독을 서슴없이 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은 별다른 저항 없이 교수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다. 교수에게 잘못 보였다간 졸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 외에도 대학원생 지도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방임형 교수가 있는가 하면, 제자의 학문적 성장을 위해 성심껏 지도하는 참된 교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자대 출신이라면 학부시절부터 해당 교수를 계속 봐왔으니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고, 입학 전 선배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나처럼 타대에서 오는 경우다. 이들은 자신이 점찍은 미래의 지도교수에 대해 상세히 알기 어렵다. 학과에 근무하는 조교에게 문의를 해봤자 원론적인 내용만 말해줄 뿐 정작 중요한 내용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조교는 그 학교의 직원이자 교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진학 여부가 불확실한 외부인에게 솔직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아무래도 많은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제자가 (학문적으로) 본인과 다른 견해를 제시할 경우, 이를 어떻게 대하는가의 여부도 중요하다. 물론 석사과정에서는 학생의 연구가 미숙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교수의 지적에 수긍하며 마무리 되곤 한다.


나 역시 지도교수님과 상당한 마찰을 겪었는데, 여러가지 면이 마음에 안드셨는지 당신의 뜻대로 바뀌기를 요구하셨다. 다른 이들은 졸업을 위해 그저 인내하였으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나는 자퇴하겠다는 극단적인 의사를 표출하였다. 다행히 사건은 원만히 해결되었고 서로가 처한 입장을 이해하게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후 나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한편 학생들과는 수업 이후 스터디를 하면서 많이 교류하였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비대면 의사소통이 활발해졌다. 때문에 직접 얼굴을 보기보다는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오프라인에서는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얼굴을 자세히 볼 기회가 없었지만 온라인으로 보니 다들 앳된 얼굴들이다. 여기서 내 나이가 많은 편이라 그런지 다들 동생같고 예뻐보인다.  


학생들간에는 선후배를 막론하고 서로 선생님으로 호칭한다(물론 학부시절부터 알던 경우 언니-동생하는 경우도 있다). 학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지 않은 나도 선생님이라고 불렸는데, 처음에는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부끄러워서 그런지 공부를 더 하게 되는 효과도 있으니, 마냥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대 출신이 아니다보니 은연 중에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후배들이 나와 자대 출신 선배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더욱 확연히 느껴졌다. 자대 출신 선배들이 딱히 뭔가를 더 챙겨준 것도 아닌데, 그들을 더 따랐다. 섭섭한 마음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대학원판 골품제라고나 할까?


그리고 미술사학과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학생이 적었다. 그러다보니 속시원히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상대가 많지 않았다. 공부를 제외하면 여학생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심적으로 답답함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전에는 관심없던 남학생들이 후배로 들어오자 상대적으로 눈길이 가는 기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입학전에는 지도교수가 학생들을 일일이 연구실로 불러서 연구를 지도 해주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현실에서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도교수는 항상 바쁘다. 학교에서 강의하고 개인적인 연구 외에도 외부에서 해야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학생들을 하나하나 봐줄 여력이 없다. 대학원에서 연구는 그저 혼자해야 하는 것이다.


지도교수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수업에서 하게되는 발표다. 발표의 수준은 본인이 연구를 얼마나 열심히, 또 많이 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발표의 수준이 높을수록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며, 발표가 성의 없다면 그만큼 호된 질책을 받게 된다. 교수의 입장에서 봤을때 대학원생의 성의 없는 발표는 단순히 연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교수 역시 인간이므로 연구를 열심히하는 학생에게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발표가 형편 없다면 교수의 조언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어려워진다. 발표의 수준은 연구의 질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심기일전하여 공부와 연구에 매달린다면 다음 발표에서 반전을 일으킬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발표 시간을 점점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부 학생들은 지도교수가 아닌 다른 교수의 수업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도교수의 수업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교수의 수업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시야를 넓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므로 소홀히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렇게 넓어진 지식은 졸업 논문을 쓸때 도움이 되며, 졸업 이후 훌륭한 연구자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추신 : 글이 좀 두서가 없는데, 일부러 수정하지 않았다.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혹시라도 주변 지인들이 볼까 두려워서이다. 그렇게되면 상당히 껄끄러운 상황이 연출될거 같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으면 한다. 꼭 필요한 사람만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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