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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Feb 19. 2021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들

유튜브에 달린 악플을 보고

작년에 올렸던 유튜브 영상이 한편 있다. 김영삼 정부시절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게 최선의 선택이었나를 따져본 내용이었다. 영상 말미에 내린 결론은 너무 반일 감정이 앞서서 성급하게 철거 결정을 한 측면이 있고, 이런 정서를 정권의 지지율 확대에 이용한 점은 아닌지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부수는대신 현 독립기념관 부지에 잘 이전해서 일제강점기 자료관 등으로 활용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피력했다. 

썸네일이 일본과 관련되어 있다보니 흑백논리에 휩싸인 자들의 클릭을 받은 모양이다.


나는 영상에서 분명히 총독부 청사는 경복궁의 앞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당시의 자리에서 철거하는 게 마땅하다고 언급하였다. 다만 폭파하여 산산조각 내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은 아니라고 했을 따름이다. 물론 그 자리에서 폭파하였으니 속은 시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지난날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잘 곱씹어서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후손들을 위해선 더 바람직한 방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영상에는 싫어요가 꽤나 많이 달렸다. 조회수가 적은 내 채널이지만 그 동영상은 꽤나 조회수가 높았다. 일본과 관련된 내용이라 꽤나 자극적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잘 폭파했다고 생각한다."

"이런말 나오기 전에 폭파하길 잘했다."

맨 윗사람이 악플을 달았다. 매국노 강단사학 운운하는 것만 봐도 평소에 어떤 책을 보고 살았는지 대번 알 수 있다. 세번째 사람도 악플은 안달았지만 내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식의 댓글이 슬슬 달리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내가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강단사학자의 끄나풀이니 어쩌니 하는 악성 댓글이 달렸다. 보아하니 이덕일 같은 유사역사학자들이 쓴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인 것 같다. 기분이 나빠서 반박 댓글을 달았으나, 이내 삭제해버리고 그 사람을 차단시켜 버렸다. 이어서 댓글 창을 막아버렸다. 이런 부류들과 몇차례 논쟁을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결론만 주장할뿐 그런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는 부족하다. 그 결론이란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의 결론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번 주장이 오고가다가 논리에서 밀리면 이내 식민사학이니, 일본 정부에게서 돈을 받는 강단사학자들한테 세뇌되었다느니 헛소리를 하며 비난만 퍼붓기 일쑤다. 이런 부류들과 소모적인 논쟁을 해봤자 남는 것은 상처 뿐이니, 피하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해보니 이런 부류가 곳곳에 넘쳐난다. 따져보면 온 국민이 이런 성향을 지니고 있는듯 싶다. 정치적인 토론만 봐도 상대진영의 주장을 비난만 할뿐, 제대로된 비판은 없다. 비난을 위한 비난만 있을 뿐이다. 상대진영을 비판하다가도 본인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세력이 그와 비슷한 행위를 하면 태세를 바꾸어서 옹호한다. 여기엔 좌우가 따로 없다. 이것이 이른바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지지하더라도 잘못을 하면 건설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건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기 일쑤다. 본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은 모두 부처님, 예수님처럼 완전무결한 존재다. 이래서 무슨 발전이 있을까? 


흔히 꼰대라 비판받는 부류들이 있다. 본인의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나이든 노인들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젊을때 형성된 가치관으로 살아오다가 사회가 변화하자 적응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다. 


그런데 꼰대는 모두 노인들 뿐일까? 한번쯤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젊은 사람들도 논쟁을 하면서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후배들을 가르치려들기 일쑤다. 상대가 나이든 선배라면 꼰대라는 단어를 꺼내며 비난하기 일쑤다. 그 주장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타당해도 내가 듣기에 불편하면 비난부터 하고 보는게 일상이다. 꼰대라는 단어는 이럴때 내 의견을 합리화 시켜주는 좋은 무기가 되는 것이다. 청년들이라고 꼰대가 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는가? 지금의 꼰대들도 젊을 때는 나름 진보적이었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까?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는 달리 말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이다. 과격하게 표현하면 생각을 안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을 해야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수용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생각을 안하는만큼 그 사람의 시야가 좁아지며, 좁아진 시야만큼이나 인생의 발전 가능성도 자연스레 줄어들기 마련이다. 노인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청년들은 그 전철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다양성이 줄어들고 획일적인 사회가 되어 우리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로 우리나라는 정치인들만 똑바로 일하면 나라가 잘될 것이라 한다. 얼핏 맞는말 같지만 모순이 있는 말이다. 흔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들은 그 나라 국민들 가운데 가장 실력있는 사람들이다. 국민들의 수준이 곧 정치인의 수준인 것이다. 이말인즉슨, 국민들의 평균적인 수준이 올라가야 정치 수준이 올라간다는 의미다.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소모적인 좌우대립 구도하에서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길고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합리적인 행동일 것이다. 정치인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서라면 말이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지적수준이 높고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반드시 공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몸으로 익히는 기술이나 경험 등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것이다. 살림하는 방법이나 운동법, 연애로 배운 심리 같이 사소한 것들도 포함한다. 끊임없이 배우다보니 세상에 전문가가 많다는 것을 알고 그만큼 겸손하게 되며 나날이 발전한다. 이런 사람이라면 자연히 성공확률도 높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반면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배우려 하지 않고 어릴때 배운 지식과 젊은 시절의 경험을 가지고 평생을 산다. 그만큼 시야가 좁고 지잘난 맛에 산다. 세상에는 정답이 존재한다고 여기며, 자신이 그런 삶의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세상에 망조가 들었다거나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자조섞인 한탄을 하기도 한다. 


솔직히 나도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글은 거창하게 써놓았지만 지금의 나 역시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도 나이가 먹어갈수록 체력적으로 힘들고 생각이 굳어가는게 느껴진다. 정말이지 두렵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겠다. 그래야 유튜브에 악플을 단 사람들과 반대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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