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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Apr 27. 2022

그림생각, 다시 예전처럼...

가끔 아이들은 자신이 조금 더 어렸을 때 누구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궁금해 한다. 마흔 네 살의 나도 어렸을 때 내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컸는지 또 나만 모르는 소중한 추억이 있는지 궁금한데 아이들이라고 왜 안 그렇겠나. 지난번 시골에 갔을 때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 나 어렸을 때 눈 마주치면서 쎄쎄쎄 해줬어?" 아빠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시더니 '그런 거 할 시간이 어디있었나?' 하시며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엄마는 '니네 아빠는 놀아주는 것도 참 멋없게 놀아줬어. (놀라게 하고) 은하야! (놀라게 하고) 은하야! 아이고 귀엽다!'라고 말씀하시며 당황한 아빠를 돕는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조차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아빠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방법을 몰랐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문명의 혜택을 조금 더 누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추억이 떠올라 궁금할 때면 바로 가시화 시킬 수 있고 또 그 추억을 검색해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우리는 그저 그때에 있었던 일들을 글, 사진, 영상, 음성 등의 방법으로 기록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원할 때 언제고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록을 볼 때면 마음도 함께 재생되니 추억을 의심할 필요는 없겠다.


나의 출산 후 아이들과의 추억은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또는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파일 등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꼬맹이는 가끔 '엄마 나 아기였을 때 오빠가 얼마나 좋아했어?' 하고 묻곤 한다. 추억을 찾아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1년, 2년, 3년 그리고 4년 전으로 스크롤하며 아이들과의 어떤 추억을 기록했는지 함께 확인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사생활 노출을 최소화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했던 수많은 활동들의 결과물이 그때의 생각과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아이들과의 미술활동도 많았지만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을 때의 흔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펜을 들어 그렸네. 망설이지 않고 그릴 수 있었네. 재료도 다양하게 써보고 나름 노력도 많이 했네. 지금은 생각만 많지, 정작 그리지 못하니 무슨 일인가.'


아이들의 추억을 찾아보다가 나의 그림에 대한 기록들을 훑어보며 그림에 있어서 아무런 진척이 없는 내 자신이 무척 한심하게 느껴졌다. 생각은 그럴듯하게 많은데 정작 완성한 그림은 손에 꼽는다. 제일 싫어하는 '척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림 그리는 척', '예술하는 척', '그림에 진심인 척' 등 난 그동안 '척하며' 살고 있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따져 보고 싶었다.





떠오르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가 느낌만으로 스케치를 했었다. 주변에 뭐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아도 그 느낌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릴라치면 구도는 어떤지 어떤 형태인지 주변에 뭐가 있는지 게다가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인지 아닌지 따지는 게 많아졌다. 그냥 그렸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완성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따지게 됐다. 그러니 붓을 들지도 못할 뿐더러 하물며 스케치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빨리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즐기는 마음을 잃은 게 아닐까 싶다.





난 오로라를 좋아한다. 난 산을 좋아한다. 자연의 빛을 좋아하고 자연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분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길 좋아한다. 형이상학적 선의 표현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불규칙적이고 의미없는 선들을 사랑한다. 물결치는 것처럼 보이는 산을 그리고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그리고 산봉우리만 보이는 운무가 가득한 산을 그렸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기 보다 좋게 보여질 것을 더 많이 고민했었다. 그건 내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었고 잘 그리고 싶다는 조급함을 부추겼다. 회회는 잘 보이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과 실제 행동은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던 거다.





처음 그림은 수채화가 좋아 시작했지만 그동안 다양한 재료를 만져보는 데 노력을 기울였었다. 건식 재료로는 연필, 콩테, 흑연, 소프트 파스텔, 오일파스텔 등이 있고 습식 재료로는 수채화, 유화, 아크릴, 먹 등이 있다. 사물을 묘사할 때도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기 보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으려 기법적인 부분들을 배우는 데 노력했다. 다양한 기법으로 그려보려는 노력은 참 좋게 보인다. 하지만 정작 스타일을 정하고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리다 보면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더 많이 그려보고 그 안에서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스타일을 만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머리로 그리는 그림은 더이상 그리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싶은 것을 무작정 스케치 하고 채색해 완성하는 과정을 다시 일상으로 가져와야 한다. 정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밖으로 돌아다니는 생각을 안으로 집중시킬 수 있도록 잡생각을 최소화 해야겠다. 기법을 연구하는 노력에 더불어 연습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자.

그림을 열심히 그리자.

그림을 열심히 생각하자.





#그림생각

#지금은매일드로잉을하고있다

#매일그림생각을하고있다

#매일실험적인생각들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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