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시골 밭에서 나는 냉이를 캐 놨다가 다리가 실한 것만을 깨끗이 씻어서 국 끓일 때 넣어 먹으라며 주신다. 또 산과 들에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때에는 두릅, 달래, 참나물 등 좋은 것들만 빼 놨다가 나는 물론 시어머님까지 친정엄마가 딸을 챙기듯 그렇게 바리바리 싸서 택배를 보내신다.
여름에 농가는 나가기만 하면 먹을 게 지천이니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식재료를 마음껏 차에 실어 주시곤 했다. 좋은 공기를 먹고 자란 잎이 넓은 상추부터 대가 굵고 싱싱한 파며 살이 연하고 달콤한 호박에 아스파라거스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우리집 농장은 식재료 지출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호박밭 창고에서 따서 바로 쪄먹는 옥수수는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가을이 되면 배, 사과, 포도, 밤 등 열매란 열매는 자급자족해 먹을 수 있으니 특히 배와 포도는 마트에서 사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20여 년 넘게 포도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 가족은 고당도 캠벨 포도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감자 캘 때가 되면 온 식구가 밭에 나가 주먹만 한 감자를 발견할 때마다 소리를 질렀고 아이들은 어쩌다 딸려 나오는 지렁이와 온갖 벌레들에 놀라 뒤로 넘어져 똥꼬가 젖기 일쑤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장 큰일인 김장을 할 때도 부모님은 배추며 무며 쪽파며 마늘이며 한차 올려주신다.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하는데. 엄마가 온갖 먹거리들을 챙겨 주실 때마다 '엄마가 안 계시면 이 많은 것들을 난 어떡하지'라고 자꾸 주책없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좀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 나는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먹거리들을 챙겨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일단 크든 작든 밭이 필요하고 사과과, 배, 포도, 감, 밤, 매실 등 주요 나무를 몇 그루씩 심어야겠다. 봄이 되면 구획을 나눠 채소를 심어야 하고 고추, 토마토, 오이, 호박, 파 등은 필수이겠다. 아, 아스파라거스도 심어야겠다. 시장에서는 비싸지만 은근히 잘 자라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 쓰면 맛 좋은 음식을 상에 올릴 수 있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난 이 많은 것들을 돌볼 자신이 없다.
지난주 토요일에 시골집에 갔다. 서울이 춥다고 하지만 가평은, 그것도 산골에 쏙 들어가 있는 부모님 집은 체감 온도가 더욱 낮았다. 아빠가 아궁이에 불 좀 지폈나 보다. 뜨끈뜨끈 절로 졸음이 쏟아졌다. '은하야? 뭐 하니? 잠깐 나와봐라!' 엄마가 다급하게 부르신다. 주섬주섬 겉옷을 걸치고 드르륵 마루 문을 열었는데 마당에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인지 김인지 모를 것들이 가득이었다. 엄마는 그 속에 있었다. "뭐해 엄마? 추운데? 나오면 꼭 뭘 하드라." 투덜거렸지만 내 몸은 이미 엄마와 연기인지 김인지 모를 그 속에 함께였다.
엄마는 장을 담그고 있었다. 사랑방 뜨끈한 아랫목에서 메주를 말리시더니 새빨갛고 고운 고춧가루와 함께 버무려 우리가 사계절 가져다 먹는 장을 만들고 계셨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어쩐지 온몸이 부은 것 같고 피곤해 보였던 엄마는 그래도 해야 할 건 하신다. 다만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내려왔을 때 마침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딸은 툴툴거린다. 하지만 이내 장을 맛보고 도구들을 씻고 장독대에 담는 것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엄마가 나 내려온 날 힘든 걸 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고무장갑을 벗었다. "엄마? 나 장 만드는 거 배워야 할까 봐. 메주, 고춧가루, 소금, 엿기름 또 뭐가 필요하지?" 엄마는 피식 웃으시면 "사먹지 뭘 만들어 먹어. 요즘 맛나게 잘 나오더만." 하고는 만드는 방법을 순서대로 말씀해 주신다.
작은오빠가 남편과 읍내에 나가 치킨을 사 왔다. 손을 쪽쪽 빨면서 어찌나 맛나게 드시던지. 기분이 좋았다. 식사가 끝나고 둘러앉은 자리에서 그동안 말을 못 하고 산 것도 아닐 텐데 오고 가는 말들이 참 많았다. 엄마는 간 수치와 염증 수치가 높아져 몸이 불편하고 얼굴이 붓고 대변을 며칠째 못 보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얼굴이 불편하게 느껴져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약을 먹고 있으니 지칠 만도 하지. 몸이 좀 괜찮다 싶으면 약을 건너뛰고 해서 먹어야 할 양을 한참 밑돌게 드셨나 보다. '이러다 쓰러져서 며칠 병원 신세 좀 지셔야 정신을 차리죠.'라며 의사는 엄포를 놨나 보다.
엄마가 더 오래 곁에 있으면 좋겠는데 아픈 곳이 너무 많다. 마음이라도 좋게 먹으면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듣기 싫은 소리를 쏴대고 말았다. "엄마, 약을 먹기 싫어도 이 약을 먹으면 몸이 좋아지겠지 생각하고, 아주 조금 아픈 건 몸이 노쇠해져서 그런 거겠지 하고 넘어가고, 굳이 안 먹어도 될 약들은 추가적으로 먹거나 그러면 안돼. 낮에 졸리면 세상 편하게 자고, 그래서 밤에 안 졸리면 일어나 TV도 보고 잣도 까면서 마음을 편하게 먹어봐. 꼭 밤에만 자란 법 있어? 잠이 올 때 푹 자고 편해져야 밤에도 잠이 잘 오지." 내가 할 수 있는 잔소리는 여기까지란 걸 잘 알면서도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엄마가 낮잠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말을 보탰다.
가끔 엄마 아빠가 계신 가평으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다. 곁에 살면서 일손도 돕고 집안일도 봐드리고.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생각이란 걸 알면서 뭐라도 힘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작은오빠의 글램핑장 때문에 배나무가 줄어 수입이 줄어들 것이 걱정이 된 아빠는 뭐라도 해서 채워보려 하시는 반면에 엄마는 아픈 몸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시다. 수시로 내려가 일손을 돕는 방법밖에는 없다. 지금은 그게 최선이다.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래야 엄마가 더 오래 곁에 계실 수 있겠다.
#엄마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