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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jin Jul 05. 2024

3. 내가 돈까지 벌어야 돼?

결단을 내려야 해

남편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는 나의 마음은 처음엔 가랑비에 젖듯 미세했지만, 흐르는 시간만큼 겹겹이 쌓여 결국 나를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 또한 그것은 마치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억울함이라는 축축한 감정을 데리고 왔는데, 그 속에 잠긴 나는 더 이상 주말에 오는 남편이 반갑지 않았고, 내 수고로움에 비해 너무도 여유로운 남편의 생활을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둘째를 낳고 백일이 며칠 지났을 무렵, 나는 두통과 고열을 동반한 병에 걸렸다. 처음엔 감기 몸살이라 생각하고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었지만, 2주 내내 같은 증상이 지속되어 결국 대학병원에서 뇌수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2주간 입원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은 내가 대학병원까지 가기 전, 당시 내가 아픈 것을 알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을 옮겨 다니며 이 검사, 저 검사를 하는 동안에도 내 상태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남편이 없는 주중에 병원에 갈 때는 가까이 살았던 언니가 와서 아이들을 봐주었고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할 때는 동생이 보호자로 동행해 주었다. 

남편의 역할은 없었다. 

또한 입원과 동시에 뇌척수액을 뽑아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듣기까지 약 일주일이 걸렸는데, 이 병이 만약 세균성이라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해서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일주일이 무척 긴장되고 불안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마음은 남편에게 채 닿지 못하고 받아주는 사람 없이 그냥 허공에 사라지고 말았다. 2주 간의 입원 기간 동안 남편은 회사 때문에 주말에만 병문안을 왔다. 보호자가 아니라 그냥 지인처럼. 그런 남편 대신 동생이 와서 나를 돌봐주었고, 나는 병실에서 사귄 비슷한 처지의 또래에게 더 의지했다. 


남편은 대체 뭘까. 

남편에게 대체 나는 뭘까. 

삶과 죽음을 걱정하고 있을 때도 내게 보였던 남편의 무심함. 



둘째 출산으로 인한 육아휴직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나는 복직 후의 일상이 두려워졌다. 혼자 아이 둘을 돌보는 일에 회사 일이 더해지는 것이다. 회사의 배려로 둘째 임신 기간 동안은 내게 주어진 업무 책임이 그리 무겁지 않았지만, 복직 후엔 다를 것이고 또 달라야만 했다. 복직을 위해 둘째의 어린이집과 등하원 선생님을 알아보는 것도 내 몫이고, 첫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지체 없이 퇴근하여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일과 집에 돌아온 후 바쁘게 돌아갈 저녁 일상도 내 몫이었다. 

그에 반해 남편의 일상은 여전히 똑같겠지. 아이가 둘이나 생겼지만 여전히 미혼일 때와 똑같이 어머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고, 퇴근하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삶. 나는 슬며시 심술이 났다. 또 나만 기약 없는 바쁜 일상을 보낼 것에 대해. 남편과 나의 일상이 너무나도 다를 것에 대해. 


도대체 결혼하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도 남편은 대체 뭘 포기한거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남편이 포기한 것은 없었다. 

결혼 전과 결혼 후, 아이가 없을 때나 있을 때나.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통보했다. 


“너도 나 복직하면 여기서 출퇴근해. 퇴근해서 애들이랑 30분이라도 시간 보내. 

나 혼자 살림, 육아, 회사까지 다 하는 건 좀 말이 안 되잖아.”


그래서 남편은 6개월 정도 매일 왕복 140km를 출퇴근했다. 


그러다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는데 그건 바로 남편이 출퇴근을 한다는 이유로 주말에 늦잠을 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중에 장거리를 운전한다는 이유로 주말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푹 쉬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는 또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나는 몇 년을 발 동동하면서 다 했는데, 고작 몇 개월 출퇴근하면서 세상 힘든 티를 팍팍 내는지 남편이 너무 미웠다. 

그래서 나는 주말이 되면 데리고 다니기 수월한 첫째만 데리고 외출했다. 우리끼리 산책도 하고 밥도 먹고, 카페도 갔다. 둘째가 자기도 가겠다고 울고불고했던 적도 많았지만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는 남편에게 혼자만 편한 휴식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에 잠만 자는 남편, 엄마와 함께 나가고 싶어 눈물 보이는 둘째.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남편은 장거리 출퇴근 과정 자체를 육아 참여로 단정 지었고, 그 시간에 내가 퇴근하여 아이들을 챙기는 것과 같은 거라고 말했다. ‘물리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까.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주중에 남편이 30분이라도 아이들과 얼굴 보고 놀아주는 시간을 보내면 그걸로 그의 역할을 다했다고 하자. (당연히 피곤하다고 그렇게 안 했지만.) 하지만 주말은? 나는 주말에도 아이들 케어를 다 하는데? 청소도 내가 하고 빨래도 내가 하는데? 복직 후 연차 높다고 회사에서 압박도 주는데? 이것저것 다 내가 하는데 돈까지 내가 벌어야 돼? 그럼 나 돈 안 벌어. 너 혼자 벌어 봐. 

나의 퇴사는 이렇게 결정되었다. 

우리는 이 시기에 정말 많이 싸웠다.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를 할퀴며 서로 자신이 더 힘들다고 싸웠다. 남편의 회사 지인은 매일 출퇴근하는 남편에게 위험하다며 미쳤다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은 내게 매일 졸음과 싸우며 목숨 걸고 출퇴근하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했다. 여태까지 내 수고로움에 대해 한 마디도 미안하거나 고맙다는 말을 한 적도 없으면서 겨우 몇 개월 출퇴근한다고 우는 소리라니. 

그래, 이제 목숨 걸고 출퇴근하지 말고 주말부부 끝내자고. 


그때는 주말부부를 끝내면 행복한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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