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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jin Jul 05. 2024

5. 이상하다?

우리 아무 문제없는 거 아니었어? (1)

- 지긋지긋한 그 이름 ‘잠’


“쟤는 집에 와서 애들이랑 시간 보내는 게 짐일까? 그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닐까?

나는 왜 쟤가 누워서 자고 있으면(늦잠, 낮잠) 화가 날까? 얼마 전의 쟤 휴가 때 우리가 생각보다 싸우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건 쟤가 비록 스스로는 안 일어났어도 휴일치고는 이른 시간에, 내가 깨웠을 때 10분 내에 벌떡 일어나서 침대 밖을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가 깨우기 전에 일어나서 애들 아침도 챙겨줬어야 했지만, 평소엔 깨워도 늘 30분~1시간 정도는 미적대는 사람이 휴일치곤 비교적 이른 시간 (8시쯤) 깨워도 군말 없이 일어나니 난 얘가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는구나 싶어 화가 안 났다. 목소리 높일 일도 없고 비교적 평화로운 휴일이었다. 


하지만 어제처럼 퇴근하고 지 할 거 다 하고, 씻지도 않고 휴대폰 보다가 소파에 누워 눈 감고 자고 있으면 얘기가 달라져. 애들이 퇴근한 아빠랑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또 엄마만 찾으니까. 뭔가 필요해도, 둘이 싸워도 무조건 엄마. 나는 이제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하다. 엄마 좀 그만 찾고 서로 해결할 수 있었으면. 이런 스트레스를 우리 집에 어른이 둘인데도 나만 받는 게 억울하다. 쟤(남편)는 왜 집에 오면 쉬고만 싶은 걸까. 나도 종일 힘든데. 쟤는 가정보육이란 게 무슨 뜻인지 알긴 할까? 나와 애들 셋은 온종일 집에서 하하 호호 행복한 시간 보낸다고 생각하는 걸까.”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여름, 모여 산지 4개월쯤 지난 후 내가 일기장에 쓴 글이다. 

오랜만에 읽어보곤 소름이 돋았다. 어쩜 지금과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잖아?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코로나 시국이라 아이들 가정 보육 기간이 길어졌고,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저 때의 일기에도 썼지만 남편의 늦잠이나 낮잠은 지금도 나를 끓어오르게 한다. 애써 꾹꾹 눌러 담은 스트레스가 남편의 잠으로 인해 딸깍, 내 안의 스위치를 누르고 나는 폭발한다. 남편은 주말이니까 늦잠 좀 자면 어때?라고 한다. 나는 주말이라도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추후 잠을 더 자더라도 아이들 아침은 챙겨줘야 된다고 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9첩 반상을 차려주라는 것이 아니다. 주말이니 간단히 빵이나 과일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내가 챙기지도 않으면서 왜 이런 걸 먹이냐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근데 잠깐 일어나 그것 챙겨주는 것도 남편은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남편의 평상시 취침시간은 빠르면 열두 시 늦으면 글쎄, 아마 금요일엔 새벽 한 두 시쯤으로 더 늦게 잠들 것이다. 늦게 잠이 드니 당연히 늦게 일어나겠지. 그에 비해 밤 10시 전에 잠든 아이들은 빨리 일어날 테고. 나는 남편이 언제 잠들던지 애들 일어나는 시간엔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줬으면 좋겠다. 나도 주말엔 늦잠을 자고 싶단 말이다. 남편이 안 일어나면 내가 일어나야 하는데, 이게 바뀌질 않는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든, 배가 고프든 엄마를 찾지 아빠를 찾지 않는다. 아빠는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이다. 


남편의 잠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당시엔 남편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와 더불어 힘든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남편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었다는 것이다. 말로 꺼내면 화가 동반되어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하려던 말을 잊기도 해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점은 ‘네가 움직이지 않으면 ‘또’ 내가 해야 되는데, 나도 안 하고 싶다.’였다. 그러면 남편이 ‘아차,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 하고 노력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는데, 남편은 나의 긴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 말로는 너무 귀찮고 자기를 비난하는 말만 가득할 게 뻔해서 읽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 얘길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무너진 것은 남편에 대한 일말의 기대였을까.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남편의 행동에 대해 바로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장문의 메시지도 보내지 않는다. 안 고쳐질 게 뻔하니까. 어쩌면 포기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런 속 이야기를 하면 사람은 못 고쳐 쓴다는 말,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준다. 그냥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할 거라고 말한다.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이 나와 톱니바퀴를 맞추며 함께 나아가지 않고, 각자 자신의 길을 고집하며 제자리를 맴도는 삶. 관계의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과 평생 함께 산다는 것.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나는 무력감을 느낀다. 내겐 이 답답한 상황을 헤쳐나갈 능력이 없다고 느껴져 주저 앉고 만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경직된 집안 분위기를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이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포기해 본다.


한숨 한 번 쉬고 포기 한 번, 또 한 번 쉬고 포기 또 한 번. 내가 버린 한숨들은 바닥에 하나씩 툭툭 떨어졌다가 그것들끼리 뭉쳐지며 나를 둘러싼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두터워진 한숨 속에 침잠하는 기분이 든다.


내 말에 귀 기울여주던 그 다정한 남자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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