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짓다 Oct 09. 2021

가을 밤에 밤 조림

계절의 맛, 시간의 맛.

남편이 남겨둔 홍차가 있어 밤조림을 꺼냈다.

시간이 더해져가는 맛이 다르다 더니 갓 만들어 먹었을 적에는 포슬포슬 포근한 식감에 바스라지기도 하던 밤알이 포크를 꽃는 데 힘이 들어갈 정도로 겉이 꼬들한 식감에 씹을 수록 고소하고 짙은 밤향이 난다. 율피의 떫고 씁쓸한 맛도 거의 사라지고 마치 다달한 밤 말랭이는 먹는 기분.


고요한 집, 채도 낮은 밤

시원한 얼그레이랑 꼬들 밤조림이 기가 막힌다. 요 밤조림은 와인과 막걸이랑도 기가 맥힌 조합일거 같다.


먹다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작은 유리병을 꺼내야겠다.




이름도 이쁘지 않은 가_ 밤. 조림

밤」  하고 터져나오는 양다무진 소리와  조밀조밀하게 입술을 움직이며 발음되어지는 「조림」


겉 껍질을 까기 위해 알밤을 물에 담그었다. 밤의 속껍질이 벗겨지지 않게 딱딱한 겉껍질을 까내면 밤알의 굴곡진 사이사이 질심지가 벗겨지고 밤 알의 모양을 잡아줄 율피만이 남도록 베이킹소다에 담그둔다. 반나절에서 하룻밤을 두었다가 손으로 쥐고  목욕시키는 아기 살을 문지르듯 살살 손 끝으로 문지르면 아기의 토실한 젖살에 접힌 손목살 사이로 먼지가 일듯 율피들이 벗겨져 나온다.

그리곤 베이킹소다를 풀은 물에 다시.담궈 서너차례 끓이면 짙은 보라색 물이 나오는 데 이 과정에서 남은 율피의 떫고 아릿맛을 빼준다. 그제서야 밤조림의 준비 과정이 끝나고 밤알의 동일양 양 혹은 개인 취향에 맞춰 설탕을 넣고 뭉근하게 오랜시간 끓여준다. 이때 계피나무 혹은 계피가루, 바닐라빈 혹은 와인 또는 간장을 더해 풍미를 더해주면 비로소 밤조림이 완성된다.

이렇게 공을 들이시간을 쏟아 만들어진 밤조림은 마치 잘 사귄 친구 같으다.


따스할 때 먹는 밤조림, 냉장고에서 차가워졌을 때의 밤조림 그리고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지나고서의 밤조림이 모두 맛이 다르다. 어느 때가 최고의 맛이 할 수 없게 먹는 그 순간의 맛이 최고인듯 눈이 떠지고 같은 재료에 같은 날 같은 손맛이 담긴 것임에도 풍미와 맛은  매력이 같은 날이 없다. 마치 결이 닮은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그와 만날 적에 느끼는 침묵마저 편안함, 까르르 웃는 신남, 얻어지는 에너지와 영감, 공감의 주파수에 소통하는 즐거움 등 같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매듭짓기, 끝이자 시작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