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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다 Oct 19. 2022

마흔일기_내가 내게 마음이 안드는 날

바나나 와플

운동 마치고 들어선 남편에게 이유모를 짜증을 쏟아냈고 베일듯 날카로운 음색으로 답하며 혼자서 괜히 씩씩 거렸다. 폭주하는 감정이 감지될 땐 거친 몸동작과 날이 선 입술을 멈추고 숨는거다. 그래야 누구도 다치지 않지.


오늘은 거창하게 숨는다. <배고프면 더 짜증이 날거야.> 아껴먹는 원두도 갈고 물을 끓이고 잔을 준비한다. <오늘은 감정이 극대화되어있으니 잔은 단순한 거로 마시자> 물이 끓는 사이 점박이 옷을 입고 충분히 익은 남은 바나나 하나를 숭덩 벗겨 손바닥 위에서 착착착 썰어 남은 핫케이크 반죽만큼이나 수북히 넣는다.


나만 먹는 메뉴다.

따뜻하게 달궈진 바나나에서만 맡을 수 있는 순한 단내가 있다. 치아 사이에서 미끄덩하면서도 점성이 느껴지는 와플기계에서 눌러진 바나나의 식감은 버터향 짙은 퍽퍽함 사이에서 보드란 맛을 낸다.


빠르게 사납게 뭉텅뭉텅 베어불던 입매가 온순해져온다. 배가 푹 퍼지도록 우유를 충분히 먹는 아기 얼굴이 순해지듯 지금 내 얼굴이 먹어서 유해지는 건지_ 베어물고 씹고 마시는 이 과정까지의 행위와 냄새,소리들이 진정을 시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브레이크가 잡혀 다행이다.


늘 그렇듯 치닫는 감정에 끝에 답은 지금 여기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해야할 일을 하나씩 하면 된다.




뭐가 그리 짜증이 났던 걸까... 숨을 고르고 되짚어보니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싫었던 거다. <지금은 안돼, 못해, 돈이 없어> 부정적인 말호 할 수 없다고만 하는 내가 싫었던 거다. 왜 안되는 건데 꼭 그거야만 하는 거는 아니잖아 돈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말이지.


아이가 커갈 수록 없는 것 부족한 것이 낭만이 아닌 실족함이 되기도 한다. 혹여나 내 아이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거는 아닐까_ 물고 늘어지는 감정 씨름이 되는 오늘 같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 모든 것이 부모와 함께이기에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빨리 털어내는 것이 상책이다. 맛있는 커피을 마셨고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좋아하는 걸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읽고 쓴다.


그러면 하원하는 두 아이를 힘껏 안고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 해줄 수 있는 것들로 행복해지는 시간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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