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진술인 13화

당신의 갤러리(5/6)

by 유재영

5


지구대에 나와 스마트폰에 저장된 선배의 연락처를 지웠다. 더 지울 게 있다면 다 지웠겠지만,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단 하나, 이야기가 남았다. 선배를 모델로 소설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어떻게 선배의 이야기를 썼을까. 그림 안으로 들어간다는 상상력이야 직업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선배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런던에서 유학을 마치고 큐레이터로 근무했던 이력(선배가 꾸며낸 것일지도 모르지만)과 <빛과 어둠>전과 관련된 내용 그리고 자정의 갤러리를 걷는 선배의 걸음걸이(그런 건 흉내 낼 수 없으니까)까지도 흡사했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소설을 게재한 웹사이트 담당자에게 작가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소속을 밝혔고 소설과 관련한 누군가를 찾고 있다고 했다. 작가에게 메일을 전달했다는 에디터의 회신을 받았다. 며칠이 지나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작가의 목소리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질문이 시작되자 그가 자세를 고쳐 앉는 것이 수화기 너머에서도 느껴졌다.

“혹시, 이수진 큐레이터를 아세요?” 선배를 그 이름으로밖에 부를 수 없었다.

“아니요.”

“H미술관에서 전시를 한 적 있으신가요?”

“네? 저는 글 쓰는 사람인데요.”

“그럼, 그 소설 어떻게 쓰신 거죠?”

“집필 동기를 묻는 건가요?”

나는 소설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좋다고 말했다. 작가는 뜸을 들이더니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지난겨울이었어요. 이태원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곳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외국 사람이었어요. 피부색으로 보면 동유럽 사람인 거 같았고 수염이며 옷차림은 아랍계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남미 쪽에 가까웠죠. 몸에서 체취와는 다른, 알 수 없는 향신료 냄새도 강하게 났고요. 어쨌든 일행과 함께 저녁을 먹다가 혼자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왔을 때 옆에서 숯불을 피우던 그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저한테 혹시 작가냐고, 묻더군요. 일행과의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었죠. 그는 영어보다 한국말이 좀 더 능숙했습니다. 둘을 반씩 섞어가며 제 대답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들려주었어요. 아이 엠 페인트 맨. 아이 워즈 인 더 픽처. 나는 원래 그림 속에 있었어요. 누가 내 자리를 빼앗아 갔어요. 아임 쏘 새드. 나는 도둑맞았습니다. 내가 살던 곳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한국 경찰은 나를 가뒀습니다. 두 달간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렇게요.”

“그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을 쓰셨다는 말씀인가요?”

“시작은 그렇습니다.”

“그 남자가 더 이야기한 건 없나요. 소설로 쓰지 않은 거요.”

“있죠. 근데, 이게요. 실은 민감한 이야기예요. 초고를 공개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요.”

“화가들도 사전 리서치나 드로잉 보여주는 걸 민감해하거든요. 아이디어 회의도 무척 불편해하고요. 그런데요 작가님. 작가님이 해주신 이야기, 저만 알고 있을게요.”

“사람을 찾는다고 했죠?”

“네.”

“그분이 제가 쓴 이야기와 관련된 사람인 거 같다고요?”

“맞아요. 제 선배예요.”

“선배분 행적에 대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고 하니까, 얘기할게요.” 작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 남자요. 구치소에서 돌아온 뒤에야 그림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더군요. 미술관이 자기를 엿 먹였다면서요. 그 미술관에서 근무하셨다고 했죠? 그러면 잘 아시겠네요. 미술관 들어가기까지 과정도 꽤 험난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그 그림을 어디로 옮겼는지 알아냈다며 돈을 모으면 그곳에 갈 거라고 했어요.”

“런던으로요?”

“맞아요. 알고 계시네요?”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이니까요.”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그 남자요. 그 말이 다 사실이라면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음식점에서 무슨 수로 일하겠어요.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탈옥하지 않은 이상 구치소에서 그렇게 쉽게 나왔을 리도 없고. 우리나라가 그렇잖아요. 불체자라면 바로 추방되는 게 정상이거든요. 제 생각엔…… 그거 다 거짓말인 거 같아요. 그 사람, 그냥 정신이 반쯤 나간 놈이거나 상대 직업군에 맞춰서 떠벌리는 걸 좋아하는 타입일 겁니다. 가끔 소설가가 무슨 사기꾼이라도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이야기라면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거든요.”

“작가님은 그걸 쓰셨잖아요.”

“네? 뭐, 그렇죠. 픽션이니까. 마감이 급하기도 했고. 사람이 궁해지면 그렇잖아요. 꿈 얘기도 쓰고, 풍비박산이 난 가족 얘기도 쓰고, 친구의 불행을 받아 적기도 하고요. 심지어 내가 살인범이라고 자백도 한다니까요. 화가들도 그렇지 않나요? 모델이 없으면 별의별 물건을 다 그리잖아요.”

“그 식당에 가면 그 남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샤슬릭을 먹으러 갔는데요. 거기가 양고기 샤슬릭으로 유명하거든요. 아무튼 다른 종업원에게 그 사람 어디 갔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만뒀다더군요. 어디 갔는지는 모른다고 했어요. 한참 됐나 봐요. 아마 본국으로 돌아갔겠죠.”

잠깐의 정적 뒤에 잡음이 섞인 그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주변 소음에 묻히더니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수신음만 들릴 뿐 그는 받지 않았다.

모든 게 꾸며낸 거라며 재수 없게 말하던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선배와는 무관한 이야기일까. 신원이 발각될 위기에 처한 선배는 깊은 잠수, 완전한 도주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희망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은 가정을 세워나갔다. 선배가 몰렸을 궁지를 떠올리다가 선배의 얼굴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물며 진짜 이름도 몰랐고 선배와 같이 찍거나, 선배를 찍은 사진 한 장 없었다. 주인 떠난 방을 홀로 찾아온 기분이었다. 막다른 길이었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뒤늦게 찾아온 막막한 감정을 추스르며 전시 준비에 몰두했다.

keyword
이전 12화당신의 갤러리(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