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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범 Feb 21. 2024

오늘 하루 순삭

아직 수요일인 것엔 절망

사진: Unsplash의 Saffu








1. 출근 시간이 되자마자 내선전화가 울린다.


회계팀에서 어제 퇴근 시간까지도 입금 안 됐던 거래처에서 입금이, 됐는데 이상하다고 한다. 50%만 입금됐단 것이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정말 잘못입금한 것치곤 이상하게 딱 50%다. 


그래서 문자로 (전화하긴 싫으니) 50% 금액 입금해 달라고 연락했다. 바로 답이 오는 것이 3월에 송금하겠단다. 이유도 없이 말이다. 기분이 팍 상해서 이유가 뭔지 물었다. 



일방적인 통보다.


거래처에서 지난번에 시전한 계약서 어쩌구를 나도 똑같이 시전했다. 열이 받아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근데 지금 보니 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다. 저 말을 안 하고 바로 입금해 달라고 말했다면 감정이 더 깊게 서로 상하지 않았을 텐데.


무튼 말이 하다 하다 길어지니 돈 입금을 다시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받는 건... 안 줄 것 같았다. 2월까지 받는 걸로 확정을 지어야겠다 생각을 했고, 팀장에게 조언을 구하니 답변이 시원치가 않다. 나는 답을 구하는데 거래처 욕만 한다.


안 그래도 감정적인 거래처인데 문자내용이 격해진다. 나도 타다다다 문자를 쓰다가 멈칫했다. 이대론 안될 것 같아 법무팀을 겸하고 있는 기획전략팀 동료에게 조언을 구했다.


내용을 설명하는데 우리가 못 받은 돈이 60만 원이라고 하니 "60만 원이요?" 한다. 그렇다. 못 받고 있는 돈이 60만 원이다. 회사 파산할 지경이어도 60만 원은 있을 것 같은데 똥고집으로 안 주는 것이다. 


전략기획팀 동료는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다음 달에 받을 돈은 크니 최대한 좋게 상황을 만들어가자고 조언했다. 그래서 며칠까지 달라고 말하고 "알겠습니다" 대답을 이끌어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법무팀에 있었던 실장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덧붙였다.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정이 올라왔던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도 더한 말 나가기 전에 조언 구하길 잘했다.


다음으로 실장에게 가서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중요한 내용, 지금 받아야 할 돈은 60만원이고, 다음 달에 받아야 할 돈은 600만원이란 것을 먼저 설명했다.


법무팀 출신답게 내용증명을 보내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조언을 받을 거란걸 알았다. 속으로, 지금 내용증명 보내는 건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장은 내용증명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면서 초안 써서 보내주면 내용증명 틀에 맞게 본인이 고쳐준다고 했다.


그러다 60만원인게 번뜩 생각났나 보다. 60만원으로 내용증명 보내는 건 일을 벌이는 것 같고, 다음달에 큰돈을 또 받아야 하니 좋게 넘어가라고 한다. 하지만 제안 준 방법은 좋은 제안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 2월 말일자로 돈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거기서 거절했던 것이다. "3월에 준다고 했는데요."라고 말했는데 실장은 "회계처리가 안된다고, 2월까지 달라고 보내세요 우선. 그럼 그쪽에서 답이 오겠지."란다. 


못 받은 돈도 받아낸 실장이라고 하니 우선 그의 말대로 했다. 오전에 문자를 했는데 퇴근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답을 못 받았다.



2.  촬영 업체가 확정되어 다음 단계를 진행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 입금! 입금하려면 기안서를 쓴 다음에 지품서를 작성해야 한다. 근데 기안서를 쓰려니 계약서가 필요할 것 같다. 단건이라 안 써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계약서를 써야 분쟁이 있을 때 따질 수 있으니 쓰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어차피 기존에 썼던 계약서들도 있으니 짜깁기해서 써본다.


그전에 기안서도 써야 하는데, 이걸 TF팀원들에게 맡길 순 없을까 생각했다. 사원이지만 이 회사를 더 오래 다닌 디자이너에게 맡겨? 주임이지만 입사한 지 3개월 된 마케터에게 맡길까? 고민하다가 내가 써야지 했다.


참고할 파일들을 켜고 제목을 쓰는데, 마침 TF 마케터 팀원이 다른 일로 나를 찾는다. 어제 보낸 문안 확인해 줬냐는 것이다. 그러면, 기안서 마케터 당첨. 기안서 견본을 2개 보내주고 짜깁기해서 써달라고 했다. 계약서는 내가 쓰고. 그러니 문안 피드백에 시간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안서를 확인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왜 이렇게 빨리 하는 거야. 무튼 앞으로 이 팀원에겐 이런 일을 충분히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3. 같은 팀 동료에게 고백을 했다.



나의 신경을 가장 많이 쓰이게 한 동료 중 한 명이지만, 힘듦이 있었던 동료니까. 그 힘듦이 지금은 극복이 됐는지 예전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담당하는 팀에 소속되어 나를 돕고 있다. 


나 혼자서 신입들을 감당하고 있는 게 솔직히 버거웠다. 팀장도 온전히 실무를 봐주진 못했다. 그래서 나도 주임급 팀원이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팀장이 다 가져가버렸었다. 


그랬는데 이번에 사람을 새로 뽑고 나서 경력직 대리를 팀장이 데리고 가고 남은 주임이 내 브랜드에 배치됐다. 


그리고 동료가 다른 신입팀원의 이벤트 문안을 봐주기로 해서 저렇게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동료가 피드백한 내용을 보니 참 잘했다. 카피 짜는 거나, 이벤트 문안 아이디어는 반짝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문안을 봐주는 걸 보니 피드백을 잘 주고, 크게 잘 보는 것 같다. 나에겐 없는 시야다. 


함께 으쌰으쌰 해서 내가 나갈 때까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4. 신제품의 방향성을 팀원과 고민했다.


샴푸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어차피 내부에서 파이 나눠먹기 아니겠냐고 해서 

내가 샴푸 신제품을 준비할 때 들었던 생각을 말했다.


"우리 브랜드 내에서 선택권이 많게 만들어서 유입된 고객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또 한 제품이 안 맞는다고 했을 때 다른 제품을 추천할 수 있게 특성이나 성분을 달리해서 만들면 고객 유치에도 다양한 제품을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하니 어느 정도 설득이 된듯하다.


설득당하는 모습을 보니 나 스스로가 뿌듯해졌다.



5. 매출매출매출이 문제다.


팀장이 또 어떻게 매출을 낼건지 묻는다. 새로운 거, 노출, 이슈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챗gpt에 물었다.



아는 것들이다. 그리고 몇몇은 알면서도 안 하고 못하고 있는 것들이다. 


팀장이 답이 없다. 우리는 지금 저것들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 저것들 좀 할 시간을 줘라. 눈앞에 매출 때문에 못하는 게 너무 많다.



6. 어제 CS가 마무리 안되었던 것에 대해 한 팀원과 얘기를 나눴다.


왜 문제인 것 같은지 물으니 바쁜 일이 많아서 우선순위 일을 하다 보니 놓친 것 같다고 말한다. 어떡할까 생각하다 "깜빡하지 않게 알려드리면 되겠죠?"라고 말하니 누군가 리마인드를 하면 신경 쓴다고 한다. 


스스로 리마인드 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팀원이 아쉬웠지만, 내 핸드폰에 알람을 맞추고 알려주기로 한다. 


CS 종료시간인 오후 4시에 맞췄는데 대화하다가 바로 공지를 못했다. 그리고 4시에 바로 알려줄 필요가 있나 싶다가 깜빡하고 6시가 되어서야 생각이 났다. 퇴근시간이니 바로 얘기를 못하겠다 싶었는데, 문의를 확인해 보니 다 답변이 달려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다들 의식하고 했나 보다.


5시에 하라고 알려주면 다른 급한 업무를 하다가 또 놓칠 수 있으니,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뒀다.


내일은 알람 울리자마자 확인하고 공지해야지. 그전에 다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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