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팟캐스터로 영화를 보고 분석해 오던 지난 10년여의 시간의 결실인 듯 저는 작년 12월 생애 최초로 영화를 주제로 하는 모임의 운영자가 되었고 올해 3월까지 4개월 동안 모임은 진행해 왔다는 것을 이미 밝혔었죠. 이미 지난 글에서 시즌 1의 급작스런 중단을 예고해 드리면서 불투명한 재개에 대한 우려를 말씀드렸었는데 이제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이 연재에 적어놓은 대로 모임 공간의 운영자이신 대표님의 사고였습니다. 여전히 교통사고로 인해 입원해 계신 상태여서 운영이 불가능해졌고, 설상가상으로 공간이 입주해 있는 건물마저 수리에 들어가는 상황이어서 사용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임시책으로 대표님의 사모님께서 모임을 이어나가시기로 했으나 대표님의 간병과 살림, 자신의 일을 하셔야 하는 입장 때문에 이것마저 어려웠습니다. 결국, 현재의 공간은 서울의 다른 곳으로 이사하여 새롭게 문을 열기로 결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6월 정도로 예상하신다고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것도 지금은 불확실한 것 같습니다.
작년 12월에 시작하여 겨울방학 동안 열심히 진행해 왔던 저는 3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자 모임에 부담을 느껴오긴 했습니다. 교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3월의 하루는 정말이지 일주일같이 길게 느껴질 정도로 분주하고 힘든 시간이기 때문에 한주에 한번 외부모임을 준비하여 운영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힘에 부치기도 했답니다. 때문에 지난 글에 솔직하게 적은 것처럼 뜻하지 않게 모임이 중단되어 버리자 내심 안도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중단을 원했던 것은 아니어서 막상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아쉬움이 큽니다. 저를 믿고 응원해 주며 계속해서 모임에 오셨던 분들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말이죠.
이렇게 저의 영화모임은 농담처럼 던졌던 저의 예견대로 시즌 1이 정말 끝나버렸습니다. 따라서 이 연재도 오늘을 끝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무리하기에 앞서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차원에서 제가 모임을 통해 얻게 된 소중한 몇 가지 경험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애초에 대표님과 모임을 계획할 때 저는 저의 모임이 영화를 통해 생각을 키워 나가고 교양을 얻어가는 모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제가 지난 10년간 영화를 분석하면서 영화라는 매체에서 얻게 된 자산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쁘게 일에 쫓기며 사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단 하루, 몇 시간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저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주제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하여 내면에 쌓인 일상의 시름을 어느 정도는 쏟아낼 수 있었던 분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개월 동안 모임을 운영하면서 제가 가장 고심했던 것이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토론과 교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효과적으로 잡기 위해서는 양질의 영화를 골라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10년은 그냥 흐른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수 백 편의 영화를 분석하고 그것의 몇 배가 되는 영화를 보아왔던 저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이를 통해 제가 저 자신에게 나름의 영화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부여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 만큼 저에게는 방대한 데이터가 쌓여있었습니다. 따라서 시즌에 맞는 주제를 정하고 나면 그 주제가 가장 잘 녹아있는 영화를 고르는 일은 제에게는 비교적 용이한 작업이었습니다. 차라리 주제 선정이 좀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2월에는 대표님의 의견대로 사랑을 주제로 논했지만 그 조차도 여러 유형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을 골랐고, 1월에는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에 동기를 부여할만한 작품들을, 2월에는 교양을 위해 실화 영화들을, 3월에는 인생의 봄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들을 골랐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지난 4개월간 알찬 시간들로 모임을 꾸려나간 것 같아 끝나는 마당에 위안이 되네요.
당연한 이야기 같은데 저에게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영화 팟캐스트는 쌍방향의 매체가 아니라 진행자의 일방적인 방송을 싣는 방송이다 보니 다른 분들과 교류할 기회가 전무했고, 따라서 저를 제외한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보고 얼마나 영화를 많이 보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가 저에게는 거의 없었습니다. 4개월간 참가자들을 만나면서 제가 알게 된 가장 소중한 정보가 이것 같습니다. 매달 참가자 중 한 두 분은 저만큼 혹은 저보다 더 많은 영화를 접하신 분들이었지만, 대부분은 제가 추천해 드린 영화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소중했던 이유는 모임을 위한 영화선정의 기준을 정할 떼이 사실을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죠. 앞으로 제가 모임을 다시 갖게 될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할 중요자료인 만큼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연재를 마치자니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보다 생애최초의 영화모임은 저에게 값진 경험과 소중한 시간이 되었었나 봅니다. 저와의 시간에 와주셨던 분들도 한 분 한 분 떠오르고 설레었던 첫 날도 새삼스레 제 마음을 건드립니다. 물론 아프신 대표님 생각도 많이 납니다. 무엇보다 2025년의 새로운 기운에 대한 기대로 다가왔던 모임 운영 결정의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닐 것입니다. 한번 해보았으니 두 번째는 더 잘할 것도 같습니다. 시즌 2의 그날이 오면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제가 애정하는 영화 <노매드랜드>에 이런 명대사가 나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작별은 없다. 이 길 끝에서 우리는 다시 만난다."
다시 뵐 그날을 기약하며... 지금 잠시 작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