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지인들보다는 타인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때 더 진실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그들, 다시 만날 일이 또 있을지 알 수 없는 그들에게 라면 여타의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도 현재의 나만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3월의 영화모임은 다시 주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 봄이 왔으니 봄에 관한 주제가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주셨고, 저는 이 아이디어를 확장시켜 물리적 봄이 아닌 인생의 봄에 대해 다루어 보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고른 영화가 이것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시련을 이겨내고 인생의 봄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시련은 있게 마련이니 말이죠. 이 두 편의 영화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화 <와일드>는 엄마의 죽음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려 20대 초반의 몇 년을 나락으로 떨어졌던 여자가 기나긴 하이킹을 통해 삶을 회복하는 영화고요, 영화 <레슬리에게>는 알코올과 담배, 마약 등에 중독되어 아들도 버리고 자신의 삶까지 버릴뻔했던 여자가 극적으로 구원자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내용의 영화이니, 두 편의 영화모두 결은 다르지만 지독한 시련과 고난을 담고 있으며 각자의 방식과 상황으로 그것을 극복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두 편 모두 꼭 보시기를 강추합니다.
3월의 모임은 좀 특별했습니다. 우선, 참가자들이 7분이 오셨는데요 기존의 멤버 세분과 새로운 멤버 네 분이 오셔서 모임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30대의 직장인이 주축이었던 기존의 모임과는 달리, 40대 상담 선생님, 50대 서점 사장님이 가세하셔서 연령층이 다양해지게 되었답니다. 새로운 사람들, 다양한 연령층이 의미하는 것은 그분들께서 품고 있는 이야기의 스펙트럼과 깊이가 확장되었다는 것이었고, 과연 이것은 이번 모임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나누었습니다. 이번 모임에 오신 모든 분들은 진지하게 모임에 임할 모든 준비가 되신 분들이셔서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의 깊이가 상당했고, 저는 이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에 대한 논의가 끝이 나고 각자의 이야기를 푸는 시간이 왔습니다.
아.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저를 포함한 8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시련이 가득한 삶을 살았더군요. 본인이 암에 걸려 3년 넘게 투병하고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신 분, 어머니가 이제 막 암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신 분,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인간관계 때문에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던 분,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늘 뒤통수를 맞아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분 등 모두가 가슴 한편에 이러저러한 아픔을 간직하고 용케도 견디고 이겨내셔서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셨어요. 특히, 멤버 한 분이 최근 어머니의 암선고 때문에 마음이 힘들어서 두 시간 내내 눈물을 흘리고 계셔서 모두는 너무나 마음이 짠했답니다.
이렇게 서로의 고통과 시련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신기하게 느꼈던 점은, 비슷한 경험으로 힘든 분들은 서로의 경험으로 상대의 아픔을 보듬어 주며 자신의 경험을 보다 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는 우주에서 나의 아픔만을 바라보던 마음들이 자신의 우주를 벗어나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가는 것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나 혼자 떠돌던 외롭고 황량한 우주라는 것이 사실은 다른 수많은 행성들을 품고 있던 넓은 우주였었고 나 이외에도 나의 우주에는 타인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먼저 아픔을 겪은 사람이 현재 아픔을 지나는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했고,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아픔을 겪은 사람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날의 모임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일어서면서 어머니의 암선고 때문에 내내 우시던 멤버의 곁에 모여 다 같이 그룹 허그를 했습니다. 물론 저의 제안이었지만 그 허그가 그날의 백미였고 다시없을 마무리였습니다. 그날의 모임은 이렇게 따뜻하고 진실된 모두의 체온을 느끼며 끝을 맺었답니다.
집에 오는 길, 저의 마음이 내내 뭉클하고 제 안에서 따뜻한 기운이 계속 저를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느낌은 정말 강력했습니다. 역시, 사람만큼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존재는 없나 봅니다.
3월의 마지막 모임만이 남았는데요, 마지막 모임은 좀 특별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저의 미니 특강이었어요. 10년째 영화를 읽어온 저의 노하우를 정리해서 공유하고 전달하는 시간인데요, 무척 설레면서도 매우 긴장되었답니다. 작가 제이문이 마침내 영화에 특화된, 영화를 텍스트로 에세이를 쓰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으로 진행하게 될 저의 미니 특강!!! 그 시간은 어땠을까요?
다음 편에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