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임을 시작하고 한 달을 무사히 넘기면서 저는 저의 운영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첫 달이니 대표님 말씀처럼 영화를 보지 않아도 토론이 가능한 주제 한 두 가지만 준비하여 모임을 진행해 보았지만, 어쩐지 그 방식은 저와 맞는 것 같지 않았거든요. 어떤 점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며 헤아리다 보니 다음의 몇 가지로 압축이 되었답니다.
* 영화 모임인데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아닌 부가 되어버렸다.
* 정보가 없이 주제만 주어지니 참가자들의 대화가 사적 영역으로 빠져버린다.
* 사적인 주제로 대화가 흘러가니 대화의 방향이 해당 영화의 주제와 크게 괴리가 생긴다.
* 가장 중요한 점! 영화 리뷰어이자 영화 에세이스트로서 나의 전문성이 필요 없어진다.
영화 모임이란 제목 그대로 영화를 보고 해당 영화에 대해 먼저 살펴본 후,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와 생각거리에 대해 참가자들과 생각을 나누어야 제 입장에서 바람직한 영화 모임이었는데, 첫 달에는 영화 모임에서 영화가 빠지니 그저 모임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물론, 참가자들은 저처럼 10년 정도 영화를 분석하며 영화를 봐온 분들은 아니시니 그분들께 당장 제가 진행하는 영화 팟캐스트에서처럼 분석을 하시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죠. 그래도 이 모임은 영화 모임이고 저는 영화 리뷰어로서 영화를 중심에 놓고 참가자들의 생각을 키워드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얼마나 이 공간에서 이분들과 모임을 진행할지는 알 수 없으나(대표님의 몫이니 말이죠) 점차적으로 참가자들께 영화를 분석하고 깊이 있게 읽어내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문제점을 짚어내고 방법을 생각하면서 영화 리뷰어이기 전에 교사이기도 한 저의 정체성(왜 가끔 이것을 잊는 걸까요?)을 살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지문을 가르친 후 사용하는 형성평가의 방식으로 자료를 준비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독해시간에 사용하는 형성평가란 지문을 읽게 한 후, 지문의 내용을 간단하게 물어보며 지문에 대한 이해도를 측정하는 평가입니다. 저는 이 방식으로 우선 영화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만들고, 그 다음 질문의 범위를 확장하여 참가자들의 삶과 영화를 연결하는 질문을 만들게 되었어요.
드디어 두 번째 달의 첫 모임이 있던 날! 두 번째 달은 2025년을 여는 1월이었던 만큼 모임의 주제를 '성장의 동력을 찾아서'로 잡았습니다. 새로운 해가 열렸으니 계획을 세워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해 보자는 취지였죠. 그렇게 해서 만든 첫 번째 자료가 이것이었습니다.
첫 영화로 선정한 작품은 저의 최애 감독님 중 한 분인 노라 애프런 감독님의 '줄리 앤 줄리아'였습니다. 이 영화는 원작이 있는 영화로 원작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고 동기부여에 그만인 영화랍니다. 못 보신 분들이라면 꼭 보시기를 추천해 드려요.
저는 예쁘게 자료를 만드는 일에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첫 자료 준비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자료는 먼저 영화의 내용에 대한 가벼운 질문을 파트 1으로, 영화와 삶을 연결하는 질문을 파트 2로 구성했어요. 사실 파트 1에서 보다 주제 친화적이고 심도 있는 질문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시험문제가 지나치게 어려우면 학생들이 그 수업을 싫어하니 참가자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에서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방식으로 자료를 준비하고 모임을 진행해 나가니 너무나 수월하게 모임이 진행되었답니다. 어쩔 수 없이 수업 준비하듯 자료를 준비하고 평가를 보듯 참가자들에게 문제를 풀게 했지만, 바로 이 방식이 지금껏 제가 학교 현장에서 효과를 봤던 방식이었고, 또한 영화 리뷰어로서 주제에 대해 토론하던 방식이었으니 저는 그날부터 물 만난 물고기처럼 모임을 진행할 수가 있었답니다.
재미있게 영화를 알아보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가운데 저는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에게 영화 속 주인공인 줄리처럼 1년 동안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리스트를 관리하며 매달 숙제 검사하듯이 검사를 해드리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다들 신나게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적어서 저에게 주었고 저는 그것을 잘 간직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다음 달이 되자 참가자 몇 분이 등록을 안 하시고 멤버가 바뀌는 통에 제가 검사를 해드릴 기회를 잃고 말았답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첫 달에 참가했던 몇 분이 지속적으로 참가를 해 주셔서 그분들에게만은 살짝살짝 저의 서비스의 일환으로 버킷 리스트의 실천여부를 묻고 있어요.
제가 해 오고 자신 있는 방식을 도입한 두 번째 달의 첫 모임을 행복하게 마치고 나오며 첫 달에 지독하게 떨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확실히 사람은 새로운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잘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자신감 있게 해낼 수 있다는 당연한 깨달음이 그날만큼 제 몸을 달아오르게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저의 영화 모임은 저의 방식을 도입하며 정상 궤도에 올랐습니다. 걱정 많이 하셨죠? 하지만 저라는 사람, 한 가지가 완성되면 뒤이어 무언가 자꾸만 새로운 것을 해보려는 저라는 야심찬 사람은 여기에 또 다른 방식을 얹어 보았답니다. 그리고 이 방식이 아주 유용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음 화에서 저의 또 다른 비결을 알려드릴게요. 그럼,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