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경험을 해봐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모임을 통해 절실히 배웁니다.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어느 날 어떤 순간에 의해 드러날 수 있으니 말이죠. 그러나 경험을 통해 내가 이미 가진 자질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경험은 입체적으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줍니다.
앞선 글에서는 주로 첫 모임에서 제가 느낀 긴장감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렸지만, 제가 빼놓고 말하지 않은 부분이 바로 운영자로서의 부족한 자질, 그것도 기술적인 미숙함이었습니다.
첫 달 세 번의 모임 주제가 '사랑'이었던 만큼, 참가자들은 모두가 사랑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가지고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할 말을 산더미같이 준비한 상태로 오셨던 겁니다. 저는 운영자로서 영화를 준비하고, 영화와 관련된 질문을 준비하고, 참가자들의 말만 들어주면 되겠거니 싶었지만, 실상 가장 중요했던 일은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잘' 말할 수 있도록 진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잘'이란 의미를 풀어서 말해보자면, 참가자 전원이 공평하게 말할 기회를 갖도록 기회를 배분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적절하게 호응하거나 추가 질문을 통해 생각이 풍성해지도록 유도하고, 다른 참가자들이 끼어들어서 발화자의 말을 방해하지 않도록 티 나지 않게 돕는 일이었습니다. 듣기만 해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해 보이죠.
첫 달의 모임 때는 영화를 보고 오지 않았더라도 토론을 할 수 있게 준비해 달라는 대표님의 말씀대로 영화의 내용이나 주제에 관련된 일반적인 질문을 한 두 개만 준비해서 참가자들께 제공했습니다. 가령,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라는 영화에서는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사귄 적이 있나?'였고,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라는 영화에서는 '자신의 연애에서 최악의 상대는 누구였나?' 혹은 '당신은 연애에서 최악의 행동을 한 적이 있나?'였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라는 영화에서는 '나에게 잊지 못할 인연이 있었나?'를 가지고 질문을 몇 가지 확장해 가며 진행했었습니다. (혹시 이 영화들을 보시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재미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있는 영화들이에요.)
보시다시피 질문이 이러하니 참가자들은 이미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상태에서 모두가 열성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의 연령이 30대 직장인이어서 한창 연애와 결혼문제에 관심이 많은 시기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열성적인 참가자들 속에서 유일하게 혼자 차갑게 경직되어 이야기를 즐기지 못하고 진행에 급급한 일인이 있었으니... 바로 저였답니다. 당연하게도 말이죠.
일단 저의 미숙함은 참가자들이 주제를 보고 모임 신청을 한 만큼 할 말이 많은 상태였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모임은 대표님이 사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영화와 주제를 사전공지한 후 이루어지기 때문에 순전히 주제에 관심 있는 참가자들의 열띤 발언을 예상했어야 했었죠. 저는 이점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라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위에서 말씀드린 '잘'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규칙에 대한 저의 유연함이 필수적인데, 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자연스럽게 긴장감에 사로잡혀 뻣뻣하게 모임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첫 모임에 모인 분들은 금세 분위기에 적응하여 주제에 맞는 질문에 열성적으로 답하기 시작했습니다. 뼈아픈 사랑의 경험, 안타까운 이별, 사랑에 대한 여전한 기대 등을 진심으로 말하는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쉼 없이 터져 나왔고 모두들 재미있어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지만, 저만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참가들의 사랑이야기를 기계적으로 들으며, 진행을 위해 빠르게 메모하고 누군가 끼어들기만 하면 잽싸게 나서서 방어하기 바빴고, 심지어 촌스럽기 그지없게 앉은자리 순으로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답니다.
다행히 이제는 모임이 세 달째로 접어들고 있고, 한번 참가했던 분들의 연속적인 참가율이 높기도 해서 한층 여유 있는 모습으로 '즐기며'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지만, 지금의 이 여유는 분명 초반의 기술부족으로 제가 겪은 어려움을 발판으로 얻게 된 것이었으니, 경험이야말로 실질적 교육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배우게 되었죠. 물론, 앞으로의 모든 모임에서 여전히 저의 부족함이 튀어나오겠지만, 그 부족함은 예전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일 테니 저의 고난이 끝나지는 않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성장도 계속될 것이라 믿고 있답니다.
첫 달의 모임을 마치고 저는 느꼈습니다. 첫 달은 인턴기간이나 다름없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잘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모임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하여 제 방식으로 운영하게 된 모임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답니다. 저의 모임은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다음 글에서 변화된 모임의 모습을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