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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 에세이스트 J Sep 03. 2023

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

재커리 시거 엮음 박산호 옮김, 인플루엔셜(2022)

3년 전 성대 수술 즈음, 악화된 성대사정으로 인해 나는 말을 아껴야 했고 수술 이후에는 한동안 출근도 하지 못한 채 말을 할 수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혼자 있으면서 드는 당연한 외로움과 이상하게 한켠에서 샘솟는 뜻하지 않은 자유를 동시에 느끼며,  난 나중에서야 내가 지났던 그 시간에 나에게 발생한 두 가지 감정과 상황이 외로움과 고독임을 알게 되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영어로도 고독은 보통 solitude라 하고 외로움은 lonliness라고 구분 지어 사용한다. 한 줄기에서 뻗어 나온 듯하지만 이 둘은 우리를 전혀 다른 상황인식, 감정, 생각으로 나누어 몰아간다.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전문가들의 책을 읽고, 여러 영화 속에서 이 둘을 발견해 오던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구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책도 그러하지만!). 게다가 그것을 세계적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이용하여 보여준다고 하니 애당초 저항은 무의미했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The Art of Solitude 즉, 고독의 기술이지만 한국어 제목과 부제목(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의 낭만적 은둔의 기술)은 언제나 그렇듯 주제를 반영하고 상업성이 담보되는 독자 친화적 창작물이다. 책 전체를 놓고 보자면 독자들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고 마침내 낭만적인 은둔의 기술을 배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다 읽었고 그리하여 나는 몇 가지의 생각을 가져올 수 있었다. 나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 13명의 작품 중 고독과 관련지어 읽을 수 있는 작품의 일부 혹은 전체를 선정하여 묶은 anthology 즉, 선집이다. 단편이나 시의 경우에는 전체가 실려있지만 그 외에는 일부 발췌를 하여 실어놓았다. 


고독의 기술이라는 원작의 의도에 집중해서 읽고 싶었고 그 의도를 충족시켜 준 작가들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독>

월든에서 발췌한 이 대목의 내용은 호수에서의 생활 중 찾아오는 기분 좋은 하루, 그리고 자신을 기분 좋고 행복하게 만드는 소소한 것들과 그 이유에 대한 것이다. 내가 이 선집을 만든다 해도 이보다 훌륭한 일 번 주자를 찾기 어려울 만큼 소로는 고독과 외로움을 말하는 데에 최적화된 사람임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나는 소로가 묘사한 숲에서의 아침, 자연이 자신에게 끼치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 특히 비 오는 날 숲의 오두막에 앉아 번개 치는 밖을 바라보며 보내는 하루에 대한 부분이 특히 좋았다. 소로는 마치 대사가 적지만 메시지가 강해 여운을 남기는 예술영화 같다는 생각을 또 한 번 갖게 했다. 그러나 월든을 읽은 사람이라면 특별히 감동을 받기 힘들 수도 있다. 월든 전체에서 고독한 소로의 삶은 빛나고 있느니 말이다. 그러나 빡빡한 일상,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매몰되어 삶의 빛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휴식 같은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글이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특유의 생각방식, 즉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인 마치 독백과도 같은 에세이이다. 집중하기 어려운 그녀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 글 역시 정신을 잘 차려서 읽어야 한다. 글이 짧음에도 그녀의 생각을 따라가는 데에 애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캠브리지 교정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무의식적으로 여성이 금지된 잔디밭에 들어갔다 쫓겨나는 대목(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 (2015)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과 사교모임에서 나열한 만찬음식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이 내용들에서 마치 버지니아가 글밖으로 나와 내 눈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은 친밀함이 느껴져서였다. 그녀가 처음으로 만나고 싶어졌다.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뉴 잉글랜드 수녀>

이번 책에서 건진 가장 좋은 작품이었다. 단편소설로 전체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였는데, 책을 읽고 난 후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니 나만 모르는 작가였다! 이 책이 나에게 와닿았던 것은 원치 않는 삶을 스스로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지가 아주 잘 나와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원칙으로 운용되는 나의 세상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타인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내 세상에 누구를 들일지 말지의 권리는 온전히 나에게 귀속된다'. 이것을 확인한 작품이어서 마치 사랑스러운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에게 기분 좋은 당당함을 잃지 말라고 다독거려 준 작가가 고맙다.  


 나머지 작품들은 불행히도 나와의 교감이 훨씬 약했다. 아마도 그 작품들에서 내가 찾는 무언가, 고독의 기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이문의 생각>

고독을 배우거나 알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다양한 작가들을 알게 됨으로써 향후 독서의 폭을 넓히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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