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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 에세이스트 J Nov 21. 2023

사나운 애착

비비안 고닉(1987)

나는 이 책 <사나운 애착>으로 비비언 고닉이라는 매력적이고 독보적인 작가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내내 가졌던 생각들.  

"나라면 이렇게나 솔직하게 나를 적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내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역시 이렇게나 사나운 것인가?". 


이 책은 작가 자신이 제공한 표지에서 보여주듯 작가와 엄마의 관계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숱한 독자들이, 특히 여성이라면 당연히 (내가 그랬듯이) 자신과 자신의 엄마와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떠올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딸은 아들과는 또 다른 층위에서 엄마라는 사람과 특수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의 일생에 평생 기웃거리고 때로는 눌러 앉아 영향을 주는 이웃들의 이야기에서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은 마치 어린 시절에 들었던 노래나 영화가 그 시절의 상황과 맞물리며 그대로 그 시절과 일체화되어, 훗날 성인이 되어 비슷한 상황에 처해지면 우리의 기저에 자리잡고 인격을 형성해준 강력한 기억인 어린 시절의 인상과 감각을 우리도 모르게 첫번째로 소환하게 되는 메커니즘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을 보자마자 우선 제목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작가의 경이로운 단어 선택에 일시적인 무력감마저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쓰는 글들의 제목에 상당히 고심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보통 attachment(애착)이라는 영어단어에 fierce(사나운, 격렬한)라는 단어가 자주 어우러져 쓰는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단어보다 그녀와 그녀의 엄마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조합을 내건 이 제목은, 책의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단박에 작가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또한, 국어적으로도 '관계'를 묘사하면서 '사납다'라고 표현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러니 이 점에서 번역된 제목역시 너무나 훌륭했다(가끔 번역을 하는 나로서는 계속 감탄만 했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존재다. 그냥 그녀의 딸이어서 힘들고, 화가나고 공감이 가면서도 벗어나고 싶고, 그러다가도 그립고, 사랑하지만 미워죽겠는 존재다. 

누구보다 이해하지만 이해가 안되고, 작가에게 상처를 주지만 작가의 현재를 만들어 준 엄마. 

일반적인 엄마에게 딸들이 느끼는 감정보다 훨씬 복잡하고 강렬하며 역동적이고, 심지어 명료한 단어로는 묘사할 수 없는 언어의 영역 밖에 있는 작가의 엄마.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와의 교점이 부분 부분 글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아직까지 엄마와 살고 있는 나역시 작가가 자라오면서 봐오고 느껴온 엄마의 모습을 숱하게 봐왔다.

물론, 나의 엄마는 작가의 엄마같은 강골도 아니고, 괜한 오지랖으로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니거나 사랑뿐인 행복한 결혼생활에 목숨을 걸지도 않았기에 남편에 대한 사랑, 오직 그것만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딸인 나만 느끼고 볼 수 있는 온갖 색깔의 그녀와 그녀의 삶은, 마치 멀티버스에 공존하는 여러 차원의 그녀가 현재 차원에서 한 몸에 흡수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따라서 나 역시 혼란스럽고 이해가 어려울때가 많았다. 


엄마와 딸에 대한 숱한 책들과 영화가 있지만, 이렇게 과감하게 다 벗어던지고 마치 알몸조차 사치인듯 솔직하게 그 관계를 입체적으로, 그러면서도 깊게 파고드는 책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적 지성, 무엇이든 본질만을 건드리는 직선적 통찰력, 그리고 자유로운 생각과 감정의 흐름이 적힌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은 한나 아렌트, 버지니아 울프, 아니 애르노, 수잔 손튼, 리베카 솔닛이 그녀안에 빙의되어 한꺼번에 덤벼드는 듯한 숨막히는 경험이었다. 그녀가 왜 작가들의 작가이고 어찌하여 이 작품이 회고록의 고전이 되었는 지가 충분히 납득이 되었고, 나 역시 작가로서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나의 엄마를 사랑한다. 그녀의 굴곡진 삶을 뒤돌아보면 가끔은 몸서리치게 화가 나고 가끔은 벅차게 슬프다. 

작가의 말마따나 세월이 뭉텅이로 지나쳐 어느덧 나이를 먹어버린 나의 이쁜 엄마를 보며, 

나 역시 그 곁에서 함께 그 세월을 지나왔음을 깨닫는다.


내 기억속 선연한 어느 가을 아침. 

노란 은행잎을 던지며 웃고 있던 그때 울엄마의 나이를  

지금의 나는 한참 지나쳐버렸다. 


수많은 감정을 껴안고 

엄마와 나는 

마주 바라보고

평행선을 긋기도 하고

때로는 멀치감찌 떨어져 외면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와 이 우주에 공존함을 택한다. 


나는 그렇게 그녀와 생을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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