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앞에서 시작되는 아침

만하임/카를스루에

by 원성진 화가

새벽의 빛은 언제나 소리 없이 도착한다.
커튼의 가장 얇은 틈을 따라 스며든 여명은 방 안의 공기를 천천히 밀어 올리고, 밤새 식어 있던 시간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 그 미세한 밝음 앞에서 나는 조용히 깨닫는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고, 나는 여전히 이 세계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시는 아직 깊은 잠 속에 잠겨 있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울리는 도시의 떨림과 길가의 마른 마찰음조차 낮게 눌린 숨처럼 조심스러웠다. 세상은 늘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새로운 시간을 준비한다. 시작은 언제나 이렇게 고요한 형태를 지닌다.


카를스루에로 향하기 전, 만하임 대학교에 잠시 들렀다.
아침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투명했다. 그것은 폐를 꽉 채우는, 마음의 가장 깊은 층까지 스며드는 감각에 가까웠다. 낯선 도시의 아침은 사람을 어린아이처럼 만든다. 이유 없이 침묵하게 하고, 사소한 풍경 하나에도 오래 시선을 머물게 한다.

대학교에 도착하자 바로크 양식의 궁전 건물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밤새 내려앉은 습기가 광장 바닥에 엷게 남아 있었고, 신발 밑창이 돌 위에서 미세하게 멈췄다 떨어졌다. 오래된 돌벽은 시간을 품은 채 고요히 서 있었고, 창문마다 걸린 아침빛은 먼지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다.
한때 권력이 머물던 이 공간이 이제는 배움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잔잔한 온기를 남겼다.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은 서로의 자리를 바꾸며 결국 인간을 다음 시대로 이끈다.

도서관 앞에는 이미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학생들은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말없이 서 있었고, 하얀 입김은 공기 속에서 금세 흩어졌다. 누군가는 선채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침묵의 행렬 속에서 나는 오래된 기도의 형식을 떠올렸다.
인간은 언제나 모르는 것 앞에 서 있으며, 그 모름을 견디기 위해 하루를 살아간다.


광장 중앙의 동상 곁에 잠시 멈춰 섰다.
비둘기 몇 마리가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올랐고,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곁을 스쳐 지나갔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조용히 교차하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속의 나는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시간은 흘러가는 강이면서, 그 강물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구내식당에서 마신 커피는 선명하게 따뜻했다.
컵의 가장자리에 닿은 입술 위로 미세한 열기가 번졌고, 갓 구운 빵에서는 버터의 향이 잔잔히 피어올랐다. 그 향은 오래된 부엌의 기억처럼 마음을 조용히 적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낯선 땅에서 느끼는 따뜻함은 언제나 이렇게 단순한 형태로 다가온다.


카를스루에, ZKM 전시관.

전시관의 문은 닫혀 있었다.
유리문 너머에는 어둠이 고여 있었고, 차갑게 식은 손잡이가 침묵을 붙잡고 있었다. 잠시 그 앞에 서 있었지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삶은 종종 닫힌 문 앞에 우리를 세운다. 그리고 묻는다. 그래도 두드리겠느냐고.

관리사무소에서의 서툰 대화는 작은 미소를 남겼다.
완전한 이해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 미묘한 어긋남 속에서 오히려 마음은 가까워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 틈을 통해 서로를 바라본다.


두드린 덕분에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전시장 안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빛이 거의 없는 공간에서 발소리만 또렷하게 울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많은 것이 감지되었다. 비어 있음은 준비 중이라는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었다. 노자는 있음이 없음이요. 없음이 있음이라 했다.


다시. 프랑스로 향하는 길, 고속도로 위의 흐름은 일정했다.
국경을 넘는 순간에도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면에서는 아주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계속 쓰이고 있는 하나의 문장에 가깝다는 생각이 스쳤다.

삶은 결국 문을 두드리는 일과 닮아 있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도 다시 손을 들어 올리는 일.
그 조용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마음의 깊은 곳에서
다음 걸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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