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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28. 2024

나는 왜 못난 남자들에게 매달렸을까

반복강박에서 해방된 구체적인 경험담

*이전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363




회사에서 블로그 원고를 작성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업로드를 하기 전에 상사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는데, 새로 온 상사는 검토를 넘어서 아예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작성해서 넘겨주고는 했다. 처음에는 내 역량이 떨어져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가 새로 쓴 원고는 비문투성이에다 글의 일관성도 떨어졌다. 나를 무시하는 처사에 화가 났고, 업무 평가를 나쁘게 받을까 봐 염려됐다. 잘못되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지적해서 수정하라고 업무 지시를 하면 간단한 일을, 왜 그 자신이 두세 시간을 들여가며(심지어 야근을 하면서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다 뜯어고치는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정성껏 작성을 해도 상사가 다시 이상하게 수정할 것이 뻔해서 의욕은 떨어졌고 무기력했으며, 그럼에도 한편으로 그 상사의 인정을 받고 싶기도 했다. 어이없고 답 없는 상황에서 알 수 없는 불쾌감과 불안감이 도저히 떨쳐지지 않아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전신은 부들부들 떨렸으며 다른 일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분명 나를 무시한 처사이고 답답한 상황은 맞지만 어차피 일일 뿐이었다. 게다가 모든 업무의 책임은 상사에게 있었다. 그 상사는 혼자서 원고를 새로 작성하는 비효율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뿐, 나를 직접적으로 모욕하거나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며 괴롭히지는 않았다. 달리 생각하면 사소한 문제이고 오히려 잘된 일이기도 했다. 어차피 내가 쓴 글 그대로 공개될 리는 없고 업무 책임도 상사에게 있으니 앞으로는 대충 작성하고 상사가 고친 콘텐츠 그대로 업로드하면 돼 업무 부담이 줄어든 셈이었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나에게 크게 손해인 상황도 아닌데 비해서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분노감이나 상실감이 지나치게 크다고 느꼈다.




문득, 같은 상황에서 상사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어도 이렇게 격양되었을까? 지금과 같은 반응이었을까? 싶었다. 상사의 성별이 여성이었더라도 내 노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서 당황했겠지만, 지금보다는 일과 나를 분리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것 같았다. 기분은 언짢았어도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상사의 문제라고 빠르게 분리해 냈을 것이다. 이해는 할 수 없지만 나보다 권력과 권한이 많은 상사가 하는 일이고, 그렇다고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거나 참견하지도 않으니, ‘상사에게 무슨 개인적인 이유가 있겠지’ 수긍했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사람이 지금 회사에서 뭔가 불안하고, (비합리적인 방식이지만)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구나. 그리고 나를 질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싶어서 비록 상사이지만 귀엽고 안쓰럽게 바라보며 적당히 비위를 맞췄을 것이다. 이는 내가 비록 상사보다 연차가 낮은 팀원의 지위이지만, 은연중에 상사보다 업무역량이나 정치력, 그 외 여러모로 낫다는 자신감과 여유로운 마음, 같은 여성이라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상사에게 연민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같은 상황에서 남성 상사는 이처럼 유연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그의 비효율적인 잘못된 업무 방식을 지적해 내가 옳다는 말을 듣고 싶고, 내 글이 그의 글보다 더 낫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희한한 경쟁심리가 발동해 싸워서 그를 이기고 싶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납득을 얻고 싶었다. 


나는 이 중년의 무능력하고 열등감에 절어 있는 남성 상사에게 아버지를 투사하고 있었다. 버지에게 제대로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의 결핍을 나보다 능력이 떨어지거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남성들(즉, 아버지와 비슷한 남성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고 채우고자 하는 반복강박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오해의 여지를 줄이고자 부연하자면 모든 여자 상사를 무조건 긍정하고, 모든 남자 상사에게 거부적인 태도를 나타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별에 상관없이 배울 점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상사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직접적으로 내 성과를 가로채거나 깎아내리는 무능력하고 파렴치한 상사와는 나쁜 관계를 형성했다. 다만, 애매하게 불합리한 같은 상황에서 여자 상사보다 남자 상사에게 더 분노하고 엄격한 공정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깨달은 데서 무의식의 근원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에 구체적으로 썼지만, 나는 최근까지도 아버지를 완벽한 존재로 이상화해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나와 아버지는 문자 한 통 주고받지 않을 정도로 소원한 관계인데도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라고 ‘믿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고통받았으면서도 아버지는 나를 사랑한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나 또한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전부 아버지에게 받은 깊은 상처와 애정 결핍을 부정하고,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혐오하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현실을 왜곡해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소망하는 대로 믿은 착각이었다.


한편,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그를 뛰어넘고 싶은 욕구도 강렬했는데, 이는 엄마가 나와 아버지를 대결구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버지의 술주정에 고통받는 자식의 상처와 절망감은 외면하고, 아버지가 일하느라 힘들어서 그러니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고 아버지를 무조건 감싸고돌았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는 내가 엄마에게 받아야 할 당연한 사랑을 빼앗아 간 존재가 되었고, 내 무의식에서는 아버지를 뛰어넘어 엄마의 사랑을 되찾고자 하는 허무맹랑한 경쟁심리가 생겨난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미 여러모로 아버지를 뛰어넘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술로 불안감과 외로움을 달래다 술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나는 글쓰기와 공부로 결핍을 승화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아버지는 전두환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래도 그에게도 공이 있고, 모든 사람은 공과 과를 따져야 하며, 그때 경제는 괜찮았다’는 사건의 맥락과 본질을 보지 못하고 당위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식견이 좁은 사람이다. 끔찍한 학살자라도 경제를 살리면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물질적 결핍과 집착이 큰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만일 우리 가족이 광주에 살아서 어느 날 들이닥친 무장한 군인에게 무차별적으로 희생당했어도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고 같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공과 과가 있지만, 폭력이나 학살, 전쟁 같은 행위는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이다. 물질적 풍요도 물론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요소도 중요하다는 균형 잡힌 태도를 견지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은 (자식도 예외 없이) 어떻게든 단점을 찾아 깎아내리는 열등감이 크고, 핑계를 대며 배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변화를 두려워해 멈춰 있는 사람이다. 나도 나보다 돈이 많고 유명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보면 작아지고 질투도 느끼지만, 그럼에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면 배우려고 노력하고 부족한 점을 채우며 겸손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10대 중반에 술주정이 지긋지긋하다며 엄마와 할머니가 술주정하는 아버지가 있는 거실에 나만 방치하고 자기들은 각자 방에 가서 문을 닫아버린 적이 있다. 그때 어른들을 원망하기보다 ‘엄마와 할머니도 이 반복되는 상황이 힘드니까 그렇지. 오늘은 나 혼자 견디면 다른 가족들은 하루라도 좀 편하잖아’라는 마음으로 그 절망적인 고통의 시간을 홀로 견뎠을 때, 나는 정신적으로는 일찌감치 아버지도, 엄마도, 다른 여타 어른들도 넘어서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토록 능가하고 싶었던 아버지보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내가 더 나은 사람이거나 최소한 동등한 위치라고 자기 객관화를 하자 감격스러우면서도 허무했다. 나 혼자 허상을 붙잡고 애먼 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애초에 나에게 아버지의 인정은 불필요했다. 그건 마치 대학생이 중학생에게 학습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쫓아다니며 목매는 우스운 꼴이었다. 큰 그릇이 작은 그릇에 담기려 자신을 부수며 파괴하려는 형국이었다. 슬프게도 *역기능적인 가정환경에서 나는 너무 빨리 어른이 돼 정서적으로 너무 일찍 아버지를 뛰어넘어 온전한 사랑을 못 받은 채로 사랑을 퍼줘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계속 그 못 받은 사랑을 아버지와 비슷한 식견이 좁고 지적 수준이 낮으며, 깊은 열등감을 거짓자아와 자신만만함으로 포장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이들에게 투사해 헛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이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인정은 나에게 아무 가치가 없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었다.



*역기능 가정(逆機能家庭, Dysfunctional family)

역기능 가정은 부모의 갈등, 자녀 방임, 방관이나 학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이러한 행동을 수용하게 만드는 가족이다.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이러한 상황이 정상이라고 이해하며 자란다.

역기능 가정은 부모라는 두 성인이 초래하며, 한쪽은 전형적으로 학대를 자행하고, 다른 한쪽은 이를 조장하고 지탱하는 공의존자(codenpendent)이다. 역기능 가정의 부모는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이거나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수 있다.

역기능 가정은 사회적, 경제적, 지적 상태와는 상관없이 사회 어느 계층이든 존재한다. 부모가 별거나 이혼 직전에 있는 경우를 역기능 가정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부모의 결점이 서로를 보완하고 있기에 부부의 결혼 유대가 매우 강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이 가족 상황이 안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시 상사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내 글쓰기 역량은 객관적으로 상사보다 월등했다. 유명 작가와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실력일지라도 최소한 비문투성이에 글쓰기의 기초조차 모르는 상사의 인정은 무의미했다. 적어도 글쓰기에 한해서는 그와 경쟁하거나 그의 입에서 ‘내 글이 자신보다 낫다’는 시인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건 나의 글쓰기 실력이 나날이 나아지고 있는지, 나보다 실력이 나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가였다.

 

나는 어지간한 남자보다 아니, 남녀를 통틀어서,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유능하고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이처럼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나보다 부족한 사람에게 더는 사랑과 인정을 구걸하느라 전전긍긍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들을 보고 배우고, 나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기울이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무의식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내 인생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 오랜 반복강박에서 해방돼 자유를 확장한 지난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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