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강박'에 대해서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서로 다른 매력에 끌려서 사랑에 빠진다. 조엘은 조심성이 많고 내향적이며 안정 지향적이고 과묵한 편인데, 클레멘타인은 충동적이고 사랑에 적극적이며 거침이 없고 외향적이다. 시간이 지나서 클레멘타인은 조엘이 지겨워지고, 때때로 자신을 무시하고 신뢰하지 않는 조엘 때문에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무식하고 헤픈 여자라고 비난한다. 사실 두 사람의 성격과 성향은 그대로인데 서로에게 장점이 단점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불안형 여자와 회피형 남자. 서로 다른 매력에 끌렸다가 서로 너무 달라서 파국으로 치닫는 관계는 생각보다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조엘의 전 연인이었던 나오미는 조엘과 비슷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클레멘타인이 기억을 지운 후 사귄 패트릭은 클레멘타인이 바라던 인정과 칭찬의 말을 들려주고, 클레멘타인에게 한밤중 걸려온 전화에도 자신의 일을 기꺼이 내팽개치고 달려가 클레멘타인을 달래고 위로한다. 클레멘타인이 바라던 사람(이상형)도 조엘보다 패트릭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울 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조엘과 클레메타인은 서로에게 다시 끌리고 만다.
일종의 ‘반복강박’이다. 반복강박은 한 사람이 자신이 겪거나 경험한 사건, 환경을 여러 번 반복하고자 하는 심리현상이다. 어린 시절 성장과정에서 상처를 입었던 과정을 성인이 된 이후에도 반복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이러한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는 것은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술 먹고 횡포 부리는 부모에게서 자란 사람이 선택한 배우자가 똑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인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을 거야’라고 결심해도 결국은 아버지와 닮은 남자와 결혼해 어머니의 삶을 재연하는 딸도 많다. 아마도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부모님과,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부모님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일 것이다.
반복강박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른 글에서도 계속 다루고 있지만, 부모와 형성한 애착관계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르고의 판단과 상관없이 익숙하기 때문에 편하게 느껴서 비록 해가 되는 관계라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것이다. 상처받은 대상(주로 부모)에게서 생겨난 결핍을 채우고 보상받고 싶은 심리도 작용한다. 부모와 비슷한 대상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어릴 때 받지 못한 애정과 인정 욕구 등을 채우고자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부모를 투사해 사랑에 빠진 상대는 (부모와 비슷하기에)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실망하고 다투고 갈등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며 헤어지고, 심지어 기억을 삭제했는데 알 수 없는 끌림에 호감을 느낀 클레멘타인과 조엘처럼 다시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비슷한 연애 패턴을 반복하고……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려 자기 자신, 친밀한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 패턴 등을 자각하기 전까지 이 과정은 반복된다.
이러한 반복강박은 연인 사이에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불안정한 인간관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기나긴 이야기>에서도 썼듯이 친밀하다고 끌리는 상대나 중요하다고 여기는 대상 가운데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 대상은 스승, 친한 친구, 직장 상사 등일 수도 있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바라보듯이 나 자신이 이상화하고 권위를 부여한 대상에게서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기 쉽다.
영화에서 라쿠나의 직원 메리가 연장자이자 권위자인 스승 같은 존재, 원장 하워드 박사에게 끌리는 것으로 반복강박을 보다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기혼자인 하워드에게 이미 한번 사랑에 빠져 기억을 삭제한 메리는 다시 하워드에게 끌려서 유혹하지만, 과거의 사실을 알게 된 메리는 수치심에 라쿠나를 떠나고, 기억 삭제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게 그들이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와 진단서 등을 모두 발송한다. ‘망각한 자들이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마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라는 반복 해서 영화 대사로 읊어지는 니체의 말은 망각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다는 냉소적 의미로 다가온다.
반복강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짧게 언급했듯이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려 반복강박의 패턴을 자각해야 한다. 그럼, 반복강박의 패턴을 어떻게 자각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세밀한 내면과 신체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그 근본 원인을 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기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미화하거나 이상화하지 말고 부모의 장단점, 부모와 형성한 애착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
다음에는 실제로 반복강박에서 벗어난 경험을 이이서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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