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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23. 2024

불안정한 연애, 의존적인 관계, 이젠 모두 '굿바이'

불안정한 인간관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기나긴 이야기(6) - 끝

*이전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358




마지막으로 이혼 전후에 더욱 가깝게 지낸 오랜 친구와의 관계를 말하고 싶다. 이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비로소 예전의 나는 더 이상 없다고 직감했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자존감 낮은 연애, 가스라이팅, 의존하고 착취받는 관계에 더는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지 않겠다는 그토록 고대한 확신의 순간이 찾아왔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우리가 오랜 우정을 이어온 것은 서로 비슷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돌아보면 친구와 나는 정말 비슷한 면모가 많았고, 그래서 우리는 잘 맞는 편이었다. 그는 세심했고 섬세하며 공감을 잘하고 배려를 잘했다. 똑똑하고 성실하며 집념이 강하고 자존심도 셌다. 예민하고 사회의식이 있었으며 이해심이 깊고 다정했다. 진지하고 차분하며 충실하고 독립적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다채로웠고 깊었으며 즐거웠다.


가끔 연락하며 만나던 우리는 그가 먼저 자신의 가정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가 부모와 맺고 있는 불안정한 관계는 나와 부모님의 관계와 비슷했고,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비슷한 점에 끌려서 친구가 되었구나 싶었다. 신중하고 독립적인 그가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깊은 고민을 처음으로 나와 허심탄회하게 나눈다는 사실에 ‘내가 이런 얘기를 듣고 있어도 되나?’ 싶어서 좀 당황하고 놀랐지만, 그만큼 내가 신뢰받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기뻤다. 그리고 나도 조금씩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우리는 누구보다도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속마음을 솔직하게 주고받는 굳건한 정신적 지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계절이 두 번 즈음 지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누구보다 오랜 시간 친밀했고 익숙했고 비슷하다고 생각한 그가 글자 그대로 낯설었다. 그리고 이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왜 듣고 있어야지?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현실 자각이 불쑥 솟구쳤다. 이런 감정이 당황스러워서 겉으로는 소중한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이라며 부정했지만, 실은 그와의 시간이 절반 정도는 지루했고 부담스러웠다고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솔직하게 서로의 마음과 조언을 주고받는 관계인데, 이 불편한 감정의 정체는 뭐지? 물이 차오르는 배의 고장 원인을 하나씩 찾아내듯이 불편한 감정의 정체를 찾아서 우리의 관계를 차분히 되짚어 보기로 했다.




그와의 대화가 묘하게 불편하고 지루한 이유는 언젠가부터 그의 중구난방 한 말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A에 대한 의견이나 조언을 얻고 싶어서 물었는데, 그는 BCDE를 말한 뒤에 비로소 A로 귀결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가고는 했다. 물론, BCDE도 돌고 돌아서 A와 어떤 형태로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A를 느슨하게 뒷받침하는 이야기였으며, 그는 나에게 도움이 되고자 자신이 아는 것들을 최대한 끌어와 정성껏 조언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가 조언을 하고 싶은 건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건지 헷갈렸다. 분명히 처음에는 내가 조언을 얻고자 튼 대화의 물꼬가 어느 순간 역전돼 내가 그의 힘든 이야기를 듣고 역으로 조언을 하고, 결국은 그가 감정이 격양돼 대화를 끊지 못하고 내가 무리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심리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가 나에게 정서적으로 훨씬 의존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도 모르게 또 엄마와 맺었던 감정쓰레기통 비슷한 역할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니 실은 꽤 오래전부터 그와의 대화가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물론, 유쾌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대체 왜 저렇게 생각하지?’, ‘이건 너무 극단적인데?’, ‘그게 이렇게까지 화내고 힘들 일인가?’, ‘또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구먼’ 같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솔직하게 생각을 말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자신을 너무 쉽게 피해자 입장에, 상대들을 가해자 입장에 놓고 억울해하며, 자신은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강한 믿음으로 매번 과하게 격양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나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어떻게 처신을 하는 게 바람직해 보이느냐’며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만의 답을 내놓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화를 내는 사람 곁에서 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독이고 동조하며 화를 누그러뜨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 시기에 내가 그에게 자주 했던 말은 ‘공감하는 건 좋지만, 상대방의 일에 너무 깊이 개입하지 마라. 안타깝지만 그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네가 아무리 도와주고 알려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버려 둬라. 그리고 모른 체 해라’였다.


돌아보니 그는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는 누구보다 선한 사람이지만, 한편으로 선과 악이 분명한 어린아이 같은 관점에 갇힌 순진한 사람이었다.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에 들게 바꾸고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었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안타까워 보이는 사람에게 감정이입해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섣불리 규정짓고서 지나치게 지지하고 도와주다가, 변하지 않는 상대에게 무력감을 느끼면 알고 보니 별로인 사람이었다고 금세 마음이 식어버리고는 했다. 손바닥 뒤집듯 사람에 대한 평가를 너무 쉽게 긍정과 부정의 양극단을 오가고는 했다. 하지만 친구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며 안타깝다고 얘기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처음부터 별로인 사람이었다. 그 또한 책방 사장님과 IT 대표처럼 누군가보다 높은 위치에서 베푸는 것으로, 그의 경우에는 상대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것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유유상종. 사실 내가 묘사한 친구의 성격과 성향은 이제껏 살아온 나의 성격과 성향과도 겹친다. 내가 친구에게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 내버려 둬라’ 등 했던 말은,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고, 전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또 내가 전남편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나, 엄마, 전남편, 친구는 모두 다른 듯 서로 꼭 닮아 있었다. 독립적인 것 같지만 실은 회피하면서 또 친밀한 상대에게 과하게 의존하는 성향, 친밀한 관계에서 독립과 의존의 경계에서 갈피를 못 잡고 서로에게 독이 되고 마는 것, 우리는 서로 닮아서 그동안 외면하지 못했고 불편한 관계인 줄도 모른 채 얽히고설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의지했고 믿었으며 즐거웠고 힘이 되었던 이 친구와의 관계 정리는 단순한 헤어짐이 아니었다. 친구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엄마와 닮아 있었다. 전남편도 엄마와 비슷했는데, 전남편보다도 이 친구가 더 엄마와 비슷했다. 친구는 그리고 엄마는, 선한 사람이지만 늘 우울하고 표정 변화가 크지 않았다. 순진하고 고집 센 어린아이 같아서 융통성이 부족하고 불만불평이 많았다. 그런데 정작 이를 상대방에게 드러내지 못하고 참는데 익숙해서 화가 늘 쌓여 있지만, 내향적이라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상대의 허물은 잘 보지만 정작 자기감정을 살피는 데는 미숙해서 자신의 부족함은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변화시키고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자신은 완벽하고 옳고, 남이 부족하고 잘못됐다는 사고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변화가 매우 느리고 정체돼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와의 이별은 나에게는 곧 유약하고 의존적인 엄마와의 이별이었다. 나 자신과의 소통에 미숙해 불행했던 과거, 불안정했던 나 자신과의 이별이었다. 


친구에게 받은 쓸모는 애매하지만 소중하게 간직한 선물을 집어 들었다. 그 선물을 잡고 방구석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감정은 요동쳤고 손은 떨렸으며 마음이 아렸다. 손에 꽉 쥔 선물을 버릴지 말지 수없이 갈등하고 망설였다.


‘이걸 버리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그 친구와의 관계는 끝이야. 내가 먼저 관계를 끝맺는 거야. 이제는 다시 순수한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어. 이제는 그와의 진솔한 대화는 더 이상 없어. 어리숙했던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거야.’


‘퉁.’


선물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뚜껑을 잽싸게 닫았다. 앞으로 더는 타인에게서 엄마의 흔적을 찾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토록 바랐던 자존감 낮은 연애(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마침내 정서적 독립에 도달했다고 직감했다. 의존과 독립의 경계가 희미한 불안정한 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지나치게 깊이 빠져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전남편, 엄마, 아빠, 책방 사장님, 객관적으로 매력적이던 남자, IT 스타트업 대표 그리고 오랜 친구까지…… 이제는 모두 ‘굿바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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