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Feb 22. 2024

매력적인 두 명의 남자 이야기

불안정한 인간관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기나긴 이야기(5)

*이전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357




이혼을 하고 1년 간은 이성을 사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부족하고 한계는 있었지만 누구보다 충실했던 지난 7년 간의 사랑을 애도하기에 최소한 1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을 다해 사랑한 나에게 고요한 시간을 오롯이 허락하는 것은 자신에게 보내는 예의이자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시기에 이성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번에는 비슷한 시기에 우연히 알게 된 각기 다른 두 명의 남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남자는 객관적으로도 멋있었다. 능력이 출중해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똑똑하고 두뇌회전이 빨랐으며 책임감도 강했다. 현실 감각이 뛰어났고 눈치가 빨랐으며 유머 감각이 탁월했다. 어쩌다 집중해서 보게 된 넓은 등판에…… 가슴이 뛰었다. 의욕이 넘치고 자신만만한 모습이 손색없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 사귀면 어떨까? 재밌을 것 같았다. 다이내믹한 연애가 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배려하는 듯 각자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 하다가 조금만 지나면 똑똑하고 고집세고 이기적인 비슷한 두 사람이 저 잘났다고 뻐기고, 자존심은 세서 굽히지 않고 얼마나 싸워댈까 싶었다. 싸우고 화해하는 것이 일상인 연애도 뭐……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다 싶었지만, 관계가 오래가지는 못하리라 예감했다.


즐거운 상상을 뒤로하고 그와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날 일이 생겼다. 몇 달 사이 그의 외모와 성격이 급변했을 리 없는데, 연애를 상상할 만큼 멋있고 설렜던 사람이 이전보다는 훨씬 평범해 보였다. 물론, 그의 업무적 능력은 출중했지만 먹고살려고 경쟁력을 갖추려면 누구나 그 정도 노력을 기울여 실력을 겸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그가 나보다 여러모로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콩깍지가 벗겨지고 자기 객관화를 하자 나도 그 정도 노력은 하면서 살고 있고, 내 주위에 이 사람 정도의 실력자는 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도 잘나고 책임감이 강한 대신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는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또다시 너무 쉽게 짝사랑에 빠져 상대를 실제보다 부풀려서 상상해 높게 대우하고 애정을 쏟아붓는 자존감 낮은 연애를 할 뻔했구나 싶어서 아찔했다. 애초에 고백할 생각도 없었고 고백해 봤자 차였을 테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더 보였는데, 그는 예쁘고 어린데 속 깊고 성숙한 여성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그런 여성은 없다. 예쁘고 어리면 철이 없고, 속 깊고 성숙하면 나이가 많다. 만에 하나 있더라도 그 여성은 그와 사귈 리 없다. 자신을 다 이해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어머니 같은 여성에 대한 환상을 아직 버리지 못한 남자의 매력도는 나에게는 0, 제로이다. 그래서 실제 어머니는 네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던? 하마터면 속마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썸에도 들지 못한 이 사람과의 느슨한 관계에서 내가 생각보다 이성의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는 속물적인 사람이라고 깨달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괜찮은 겉모습이나 그럴싸한 조건에 이제는 쉽게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살포시 생겨났다.




두 번째 남자는 준수한 외모의 IT 스타트업 대표였다. 자신의 재능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가치관이 인상적이고, 주변에 베풀며 살고자 하는 선한 사람이었다. 그와는 어쩌다 대화가 길어지면서 서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돼 친분이 생겼다. 나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는 유익한 대화였고, 함께 하는 시간이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는데, 그의 말은 간혹 확 튄다고 해야 할까. 전반적으로 괜찮다 싶다가 한 번씩 ‘저건 무슨 말이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싶은 헷갈리는 순간들이 짧게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대화의 흐름을 크게 방해하지 않았고, 서로의 솔직한 생각이 오가는 시간은 잔잔하게 편안하고 소소하게 즐거웠다.


그는 매우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시간이 길어졌다.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말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데 추상적이고 중구난방이라 핵심을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되묻거나,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이런 의미인지 내가 다시 예를 들어 설명하는 등 마치 고대문자를 해석하는 것 같은 이상한 시간이 이어졌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 정도 지루하고 혼란스러운 관계는 일찌감치 정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상대를 의심하기보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내 책임, 내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했다. 이는 생존을 위해 부모를 사랑할 수밖에 없던 어린 시절, 폭력적인 성향의 아버지에게서 자식을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며, 아버지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이해해야 한다는 엄마의 상식에서 어긋난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오랫동안 길들여진 영향이 크다. 온당한 감정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계속 잘못되었다고 주입받아서 내 감정이나 생각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자기 확신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뭔가 이상한데? 그게 무엇일까? 한동안 헤매다가 ‘나 정도로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력이 높은 사람이 이해가 안 될 정도의 말이라면,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말하는 상대의 문제다’로 결론짓고 앞으로는 이 신념대로 살아가기로 했다. 꾸준한 심리상담과 각고의 노력으로 자기 객관화하는 능력이 나날이 발전한 끝에 얻은 귀한 변화였다.


중요한 생각을 하나 정리하자 이 사람에게서도 보이지 않던 새로운 면모들이 보였다. 곱씹을수록 이 사람은 책방 사장님과 여러모로 비슷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좋은 명분으로 실제로는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해 외로움을 달래고자 한다는 것(일의 목적이 일 자체보다 관계에 초점. 예를 들어, 스터디의 목적이 시험 합격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실제로는 불안감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소모적인 친분 쌓기에 있는 것), 좋은 가치를 지향하지만 거창한 말과 달리 실제 실행력(행동)은 떨어진다는 것, 손해를 보는데 이번 한 번만 도와주기로 했다는 말버릇, 베푸는 것으로 타인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고자 하는 마음 등 책방 사장님과의 관계를 성찰한 학습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불안정하고, 자기 이해가 부족하고, 노력은 하지만 변화가 느리고 정체돼 있기 쉬운 사람이었다. 멀리서 응원을 보내는 관계가 적당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은근히 나를 가르치려 들었는데, 무슨 배짱인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에게 심리학개론도 못 만져본 사람이 심지어 심리학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남자들은 이러하다’라며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을 남자만의 속성으로 치부하고는 했는데, 이 사람을 알면 알수록 그 끝에는 자신도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학습해 결국은 체화한 가부장주의가 깔려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도 그냥 평범하고 보편적인 한국 남성이었다.




사랑 앞에서 불나방 같았던 나는 조금씩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었다.

나의 내면이 성장하는 만큼 사람도, 세상도 점점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장단점이 있으며 아무리 멋지고 괜찮은 사람이라도 거리를 둬야 할 수도, 어떤 단점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좁힐 수도 있으며, 결국 선택과 책임은 내 몫이다.


세상에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

그 운명도 결국은

당시의 내 결핍과 욕망이 향하는 방향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 갈등이 첨예하기에 부연하자면, 나는 남성도 가부장제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다 같이 가부장제 시대를 살았는데, 가정에서 학습하고 체화한 사고방식을 형성한 건 필연적이지 않은가. 다만, 이제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뿐인 연인은 자신 스스로 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태도를 갖춘 사람으로 두고 싶다. 더 이상은 이 가치관 차이에서 비롯한 소모적인 갈등과 언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지치고 괴로운 일이다. 한 사람의 가치관은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결혼생활에서 크나큰 비용을 치르고 뼈저리게 얻은 교훈이다.



(이어지는 글은 조만간 업로드 예정입니다)



시리즈 관련 글

1. ‘내가 그렇게 만만해?’ 900원 때문에 폭발하다'

2. 나도 모르게 또 엄마의 위험한 그림자를 좇고 있었다

3. 사회 정의를 앞세우는 사람이 위험한 이유 

4. 연민을 자극하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5. 매력적인 두 명의 남자 이야기 - 현재 글

6. 불안정한 연애, 의존적인 관계, 이젠 모두 '굿바이'

6. 사

이전 13화 연민을 자극하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