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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20. 2024

사회 정의를 앞세우는 사람이 위험한 이유

불안정한 인간관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기나긴 이야기(3)

*이전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355




서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어느 날은 책을 몇 권 구매했는데 그의 계산 착오로 지불해야 할 금액보다 약간 더 많은 금액이 결제되었다정상이라면 당연히 취소를 하고 재결제를 해야 했지만간혹 공짜로 차를 얻어 마신 비용이라고 생각해 환불할 생각은 없었다갑자기 손님이 늘어나 정신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그가 먼저 얼마 안 되니까 오늘은 넘어가자는 식으로 말해서 이건 뭐지싶었다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다른 손님이 기다리지 않도록 재결제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줘서고맙다는 표현을 하지 않던가찜찜한 기분으로 돌아서는데 미안했는지 그가 판매용 쿠키를 건네길래 오늘 환불 건은 이걸로 퉁칠게요고마워요라고 하자 이번에는 그건 그거고 이건 내 마음이죠.’라는 생뚱맞은 답변이 돌아왔다그는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베푸는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묘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누구나 이 공간을 활용해 서점 운영, 바리스타, 프로그램 운영, 소품이나 그림 판매 등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자유롭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좋게 보면 경험과 기회의 제공이고, 달리 보면 재능 기부 또는 아직 제대로 된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험은 부족하지만 잠재력과 의욕 있는 이들을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서점 운영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한마디로 '도와달라'는 그럴 싸한 말과 공동체 회복에 기여한다는 좋은 이미지를 무기로 선하지만 약하고 순진한 이들을 싼값에 교묘하게 부려먹으며 착취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누군가에게 미루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용하고자 했다. 놀라운 사실은 실상과 달리 그는 누구보다 사회 정의를 부르짖고 구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부당한 노동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약자와 그 가족을 위한 추모회를 열고, 후원금을 마련하며, 세상에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도록 앞장서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사회 정의를 해치는 활동으로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돌아보니 이것은 (실제 좌파 개념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었다. 내가 하는 활동은 정의롭고 정당하므로 법과 질서를 무시해도 된다는 위험한 신념이 행동으로 발현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이제 나는 그를 세상의 변화된 가치관에 뒤쳐져 정신이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불안정하고 고립된 과거의 운동권 세력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실(경제적 이유)을 핑계로 착취하려는 자본가와 기성세대의 태도(사고방식)를 누구보다도 고수하면서 정의롭고 평등한 '척'하는 모순의 집약체였다.


이외에도 ‘대체 왜 일을 이렇게 하지?’,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야?’ 싶은 의심의 순간은 수없이 많았는데 일일이 다 열거하는 건 시간 낭비일 것 같다. 중요한 건 계속 의심하고 묘하게 불편한데도 왜 나는 이곳을 외면하지 못했는가 그 이유이다. 우선, 당시에 나는 동네책방은 좋은 일을 하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높은 호감을 갖고 있었다. 책방 사장님을 공동체 회복, 노동권 보장, 평등하고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신념을 동네책방 운영이라는 현실 참여로 실현하는 뚝심 있는 사람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일종의 사회 운동을 하는 모든 이들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고, 단절된 사람들 간의 소통을 회복하고자 노력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생각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실천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선망하고 있었다. 인간의 추한 탐욕과 어두운 면모는 외면하고 지나치게 순진하게 인간을 이상화해 너무 좋게만 바라보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꾸준히 6개월~1년 운영하고자 한 초반의 계획을 조정해 두 달 만에 마무리해야겠다고 준비하던 차에 이 사람과는 당장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지원을 받아 책방에서 무료로 100석 규모의 북콘서트를 열게 되었다며 시간 되면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좋은 취지의 흥미로운 행사였고 나는 손님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와서 의자를 세팅하는 등 도와주면 일정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행사는 출판사에서 일할 때 지겹도록 해서 지긋지긋하고, 알다시피 지금은 이혼 진행 중이라 심신도 지쳐서 이번 행사는 초대해 준다면 순전히 손님으로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님으로 좋은 이야기와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고 즐기고 싶은 내 의사가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그는 무슨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처럼 지난 합의는 깡그리 무시하고 다시 의자 이야기를 꺼내며 도와달라고 했다.


이날 서점에서 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시 단골 카페에 가서 사장님께 고민을 털어놓자 듣자마자 ‘나였으면 그런 사람은 바로 손절’이라며 단호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카페 사장님은 그 사람은 나를 마치 직원처럼 부려먹으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나는 이때도 분명히 뭔가 마음이 불편하고 이상해서 사연을 구구절절 털어놓고서도 ‘아…… 이런 정도의 상황에서는 손절을 할 수도 있는 거구나. 지금 나는 엄청난 무시를 받고 있는 거구나’라고 카페 사장님의 조언 덕분에 겨우 상황을 객관화하고 취해야 할 행동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완고하고 극보수적인 한편 유약해서 잘 우는 아이 같은 엄마에게 맞추고 달래며 사느라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익숙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살피고 감정을 적절히 표출하는 데는 미숙한 영향 때문이었다. 이것은 차라리 벽과 대화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외롭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견뎌야 하는 줄로만 알고 4년까지 끌고 온 이유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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