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인간관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기나긴 이야기(2)
*이전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353
사장님은 이곳은 자유로운 공간이니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했다. 기획도, 운영도, 모집도, 홍보도, 서점 내에서 필요한 자원이 있으면 얼마든지 끌어서 써도 된다고 했다. 자신은 이 공간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용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자립하는 역량을 키우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신 수익이 발생하면 일부를 수수료로 지급하는 조건이었는데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서점의 빈 공간을 활용해 자신이 만든 소품, 직접 그린 그림 등을 진열해서 선보이고 판매하는 기회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은 결국 서점 방문자를 대상으로 하고, 서점의 이미지와도 연관되지 않는가. 프로그램 세부 기획은 내가 하더라도 프로그램이 이 공간에 적합한지, 운영과 홍보는 어떻게 할지 등 구체적인 협의는 필수인 것 같은데, 그는 그저 자유롭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돌아보니 ‘자유롭다’는 것은 원칙이 없고, 자신도 별 노하우는 없으며,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든 무관심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여기에서 꼭 하고 싶다고 매달려서 얻은 기회도 아닌데, 희한하게도 서점 운영으로 바쁜 그의 눈치를 살펴 겨우 프로그램 운영을 협의하고, 홍보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내 몫이었다. 이때 이미 ‘이렇게 홍보도 하나도 안 되고 전부 내 마음대로 하는 거였으면 그냥 장소를 대관해서 혼자 알아서 진행을 했지. 굳이 여기서 이유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돌아보면 그의 무의식에서는 우리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좀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자신이 인생의 혼란기를 겪고 있는 나에게 기회를 베풀고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럼에도, ‘동네서점에서 프로그램 운영하기’라는 소박한 꿈을 이뤄서 만족했다. 홍보를 한다고 과연 사람들이 올까 싶어서 떨렸는데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신청도 해서 신기했다. 회사의 브랜드와 인지도를 빌리지 않고 나 혼자 힘으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서점 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물었다.
“거기에서 프로그램 운영하는 거 어떤 점이 좋아?”
“이게 될까 싶었는데, 사람들의 만족한 표정을 보면서 내 보잘것없는 재주가 도움이 되는구나 싶고. 다 마치고 사장님이 ‘오늘은 어땠어요?’라고 묻는 게 참 좋아.”
“그게 왜 좋아? 별 의미 없는 거 같은데……”
“꼭 학교 다녀와서 엄마에게 오늘은 이랬고, 그래서 어땠고 쫑알쫑알 보고하는 것 같달까. 이렇게 정리하는 대화 나누면서 새롭게 깨닫거나 보완할 점도 찾게 되고.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야.”
아! 불현듯 사장님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찾고 있나 싶었다. ‘오늘 학교는 어땠니? 재밌었니? 친구들이랑 별 일은 없었니?’라는 엄마의 관심이 담긴 질문을 한번도 받지 못해 ‘오늘은 어땠어요?’라는 별것 아닌 말이 그렇게 와닿았던 거였다. 나는 실은 결핍된 엄마의 사랑을 느끼러 이곳에 오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손님으로 서점을 방문해 책을 고르고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오면 왠지 모르게 갑갑하고 불편해서 기분을 정화하고 싶었다. 위안이 필요해서 서점을 찾았는데 이상하게도 다시 위로가 필요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서점에서 차를 마셨는데도 다시 대화가 통하는 단골 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로 자연스레 발걸음이 이어졌다.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으며 또래 사장님과 하하 호호 웃다 보면 기분도 나아지고 막혔던 아이디어도 다시 샘솟았다. 무엇보다 카페 사장님과의 대화는 눈치를 안 봐도 돼 편안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불편한 마음의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책방 사장님은 내가 자신의 마음을 오차 없이 정확히 이해한다며 좋아했다. 심지어 자기도 모르던 자신의 마음을 읽어줘서 ‘예뻐 죽겠다’며 좋아했다. 자기 말이 좀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거나 오해할 때도 있는데 자신의 마음을 자기 의도대로 읽어주니 시원하고 고맙다고 했다. 심지어 책방을 찾는 손님들과 대화할 시간이 충분하면 좋을 텐데, 대화도 나눠보지 못한 손님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고 책방과 자신을 오해하는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당시 나는 타인의 말을 경청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내 능력을 알아본 그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서점 운영의 어려움과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에게 공감해서 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책방을 찾는 모든 손님이 사장님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야말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내 존재 자체로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불가능한 욕망이다. 세상에는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대부분이고, 손님과 가게 주인이 서로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건 억울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자기 말이 좀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를 잘 못한다’는 정확한 의미는 ‘자기 생각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말이 횡설수설해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이 어려워 상대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성인인데도 표현력과 전달력이 미숙하다는 자기 고백이다. 자아가 덜 발달한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잘 알지 못하고, 표현력과 전달력이 미숙해 때로는 부모가 아이의 속마음을 읽어 주고 대신 표현해주기도 한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처럼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큰 활동을 기꺼이 감내한다. 이것이 내가 책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오면 기진맥진하고 자가 치유가 필요한 이유였다.
나도 모르게 모호하고 듬성듬성한 그의 말에 귀 기울여 필요한 질문을 해 그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는 답을 찾도록 하는 일종의 상담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는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활동이었고, 내 입장에서는 일종의 자발적인 감정 착취였다. 그에게 나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모호한 욕구와 욕망, 감정을 읽어서 깨닫게 하고 구체화해 필요한 답을 찾도록 하는, 서점 대표인 자신에게 서점의 생존과 운영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 답을 얻는데 유용한, 새롭게 발견한 귀한 도구였다. 무급 감정 노동. 정서의 치유와 실질적인 조언. 유약하고 아이 같은 엄마에게 평생 해온 익숙한 역할이었다.
강조하고 싶은 말
‘사람들이 간혹 자기 말을 오해한다’, ‘자기 말이 좀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를 잘 못한다’, ‘(나는) 말이 정리가 잘 안 된다’, ‘말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어렵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잘 눈여겨봐야 한다. 마치 사람들이 이상한 것처럼 탓하고 있지만 실은 자신이 의도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는데 미숙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 말이 옳다는 확신이 강한 경직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타인과 자신의 다름을 잘 인정하지 못하고 틀린 주장도 굽히지 않는 소고집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몰라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맹점이 있다. 평소에 생각이 잘 정리된 사람은 말이 쉽고 명확하며 일관성이 있다는 것과 비교하면 좀 더 와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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