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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26. 2024

자존감 낮은 연애에서 벗어나려면?

인간관계를 손절해야 하는 과학적인 이유

왕복 상자 한쪽 칸에 개를 넣었다. 왕복 상자란 좌우로 왔다갔다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의 칸막이를 세워 공간을 두 개로 분리한 실험용 상자이다. 불이 꺼지고 10초 뒤 왕복 상자 바닥에 전기를 흘려보낸다. 그럼, 개는 전기 충격을 피해서 칸막이를 뛰어넘어 안전한 다른 쪽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번에는 이동한 칸의 불이 꺼지고 10초 뒤 다시 전기를 흘려보낸다. 그럼, 개는 다시 칸막이를 뛰어넘어 안전한 공간으로 도피한다.


실험을 반복할수록 개가 칸막이를 뛰어넘는 시간은 짧아지고, 전기 충격에 노출되는 시간은 줄어든다. 처음에는 불이 꺼지고 바닥에 전기가 흐른다고 감지했을 때 칸막이를 뛰어넘어 도피하지만, 나중에는 불빛만 꺼져도 다른 칸으로 건너뛴다. 전기 충격이 없어도 불빛 자체가 혐오 자극을 회피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제는 바닥에 전기(혐오 자극)가 안 흐르는데도 불빛만 꺼지면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이 불필요한 행동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전기 충격 장치를 끄고 개가 뛰어넘지 못하도록 장벽을 높게 세우는 것이다. 이때 불빛이 꺼지면 처음에는 개가 혐오 자극인 전기 충격을 피하려고 장벽을 필사적으로 뛰어넘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개는 혐오 자극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고 좌절한다. 그런데 불빛이 꺼졌을 때 이제는 장벽을 안 뛰어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개는 이를 반복해서 경험한다. 그럼, 다시 장벽을 낮춰서 자유롭게 뛰어넘을 수 있어도 불빛이 꺼졌을 때 개는 굳이 뛰어넘지 않고 원래 있던 자리에 머무른다. 이제는 불빛이 꺼졌을 때 원래 자리에 머물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학습했기 때문이다. 더는 혐오 자극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불필요한 회피 행동을 제거하는 최상의 방법은 그 행동이 일어나는 자체를 막는 것이다(Solomon & Wynne(1953), ‘왕복 상자’ 실험 중에서).




여기에서 전기 충격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족되지 못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외로움, 보호받고 사랑받고 의존하고 싶은 마음, 불안, 불빛을 자꾸 사랑에 빠지는 불안정한 상대라고 한다면, 외로움(전기 충격과 같은 혐오 자극)을 회피하고자 자존감 낮은 연애(불빛이 꺼지면 자동으로 칸막이를 건너 뜀)에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빠져들고, 이 연쇄적인 심리 작용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해로운 인간관계를 끊지 못하고 유지하는 것, 가스라이팅에 당하는 것, 사이비에 빠지는 것도 더 이상 바닥에 전기가 안 흐르는데도 불빛이 꺼지면 외로움과 불안감 등에서 벗어나고자 자동으로 칸막이를 건너뛰는 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해로운 인간관계를 그만 맺으려면 외로움과 불안감이 엄습해도 그 관계로 건너뛸 수 없도록 높은 장벽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사람에게서 외로움과 불안을 달래지 않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나 스스로 외로움과 불안감을 다스릴 수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그제야 다시 칸막이가 낮아지고 불빛이 꺼지더라도 마구잡이로 장벽을 뛰어넘지 않게 된다. 인간관계를 자유자재로 맺을 수 있더라도 더는 외로움과 불안감 때문에 불안정하고 해로운 인간관계에 빠져들지 않게 된다.


이별을 하고 바로 연애를 하지 말고, 이혼을 하고 바로 재혼을 하지 말라는 이유는 혼자서 외로움과 불안감을 견디고 다스리는 훈련을 해 더는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심리적 독립심을 갖추라는 의미이다. 흔히 이별한 사람에게 일에 집중하고 자기 계발을 해라, 여행을 가거나 취미생활을 해라, 운동을 해라 등의 조언을 하는데, 이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사람과 세상을 향한 시야를 넓히라는 의미이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어떨 때 편안하고 불편하며,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등을 돌아보라는 의미이다. 한 사람에게 애정을 쏟아붓고 의존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활동에 에너지를 기울여 즐거움과 성취감, 만족감 등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라는 의미이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활동으로 일기 쓰기와 나를 잘 아는 친밀하면서도 안전한 관계인 친한 친구와의 깊은 대화, 가볍게 여러 사람과 두루 어울릴 수 있는 소모임 참여, MMPI-2, TCI 등의 전문적인 심리 검사 등도 추천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활동도 피상적으로 하거나 중독 수준으로 하면 심리적 독립심을 갖춘다는 목적에 퇴색된다. 인간관계를 다 끊고 식사도 건너뛰고 밤낮없이 오로지 일에만 매진하거나,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지나치게 운동에만 몰두하거나, 그저 머리를 식히고 SNS에 ‘나 잘 살고 있다’고 괜찮은 척 과시하고자 예쁘게 차려입고서 맛집을 가고 유명 관광지를 점을 찍듯이 둘러보는 여행을 한다면, 이는 의존하고 눈치보고 불안해하는 연애의 완전한 대체제일뿐이다. 이런 식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성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조언대로 한동안 연애를 쉬었는데도 다시 친밀하고 깊은 관계에 빠졌을 때,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지나치게 맞추고 이해하고 이상화하고, (내 입장에서) 나보다 높은 권위자에게 힘을 부여해 관계의 주도권을 양도하고, 보호와 사랑을 받고자 의존하려 하고, 관계를 망치거나 상대가 떠날까 봐 갈등을 회피하되 상대에게 집착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상대에게 지나치게 맞추고 이해하고…… 한없이 퍼주며 전전긍긍 불안해하는 자존감 낮은 연애 패턴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만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미셸 공드리 감독)>에서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갈등과 다툼 끝에 헤어지고 이별의 고통이 너무 힘들어 라쿠나라는 회사의 기술 도움을 받아 각자의 기억을 지우지만, 결국은 다시 서로에게 끌려서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상대를 비난하고 이 관계에서 자신이 힘들었던 이유를 담은 테이프를 돌려받아 서로가 헤어진 연인이라는 과거 사실을 알게 되지만, 결국은 다시 연인이 되기로 한다. 이들의 사랑은 운명일까. 이들의 사랑이 운명이라면, 나는 이들은 다시 운명적으로 이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다시 둘도 없는 행복한 시간을 나누고, 예전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고 행동과 태도를 변하고자 노력하겠지만, 불안정한 두 사람의 관계 유지를 위한 과정이 결코 녹록지는 않을 것이다.

비슷한 상대에게 끌리고 쉽게 사랑에 빠지고 마는 운명에 함부로 뛰어들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도 외롭지 않고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정감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왕복 상자 속 높은 장벽을 어떻게 세울 수 있는지 다음에 이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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