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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위협할 수 없는 ‘누수 해결사’

'무엇'을 보다 '어떻게'에 집중할 때

by 스마일펄

다용도실 바닥에 물이 고인다. 처음에는 닦아내면 며칠은 괜찮았는데, 이제는 펼쳐둔 수건을 30분 만에 흥건히 적시고 있다. 세탁기에서 배수를 하다 물이 새거나 역류하는가 싶었는데 세탁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설마…… 바닥을 다 뜯어내고 공사를 해야 하나? 큰돈 들어가는 거 아니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랍에서 급하게 명함을 찾는다. 누수 해결사. 다행히 있다. 다음날 배관공 사장님은 1년 반 만에 다시 우리집을 방문했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요새 자영업 하는 제 친구들은 다 죽을 지경이에요. 인건비, 자재비, 재료비가 너무 올라서 직원 없이 종일 일해도 유지가 어렵다고요. 그나마 저는 기술직이라서 경기를 덜 타지만요. 사모님은 하는 일 잘 되시죠?”

나이에 상관없이 방문한 고객이 20대~30대라도 여성은 전부 사모님으로 호칭하는 것 같다. 이사 와서 세면대와 싱크대를 수리했을 때는 사적인 얘기를 전혀 안 나눴는데, 안면이 있어서인지 사장님은 반갑게 안부를 묻는다.

“제가 하는 일은 원래도 돈 못 버는 일이라 경기를 타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대신 운이 좀 따라야 하지만요.”

작가라는 직업을 나 스스로 정의하고 흠칫 놀랐다. 알고 있는 사실을 타인과의 대화에서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대신 마음이 편한 일인가 보네요.”

생각지 않은 사장님의 혜안에 다시금 놀라며 물이 새는 다용도실로 안내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다. 세탁기 뒤편 벽 쪽의 노후화한 배관 부품 사이로 물이 새 바닥에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세탁기와 오른쪽 벽 사이의 좁은 틈 바닥에도 물이 고였다. 그 물이 바닥의 타일 사이로 스며 흘러서 세탁기 앞 바닥의 타일 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낡은 부품만 잘 교체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수리에는 30분도 안 걸렸다. 다용도실 짐을 다 빼고 바닥 타일도 다 뜯어내 터진 배관을 찾아야 할까 봐 염려했는데 별일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휴~ 한숨을 쉬며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이 일은 노하우가 중요해 보이는데 도제식으로 누가 알려줘서 배우나요?”

이번에는 내가 사장님께 질문을 했다.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은 알려줄 수 있죠. 누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수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데, 이건 가르쳐서 터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에요. 사모님 댁은 원인을 손쉽게 찾았지만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못 찾는 경우도 있어요. 오늘은 저도 운이 좋은 거죠. 이 노하우는 혼자서 시행착오를 숱하게 겪으며 알아서 체화해야 해요. 누가 가르쳐줄 수 없어요. 원인을 못 찾아도 출장비 명목으로 인건비를 받는 곳도 있는데, 저는 만일에 해결을 못하면 돈을 안 받아요. 그럼 제 입장에서는 시간을 버린 거지만,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각오인 셈이죠.”


누수 해결사. 사장님이 명함에서 왜 자신을 이처럼 소개하는지 이해했다. 실력과 양심. 내가 이분의 명함을 버리지 않고 서랍에 고이 간직하고, 누수 문제가 생기자 수많은 배관 업체 가운데 사장님을 다시 애타게 찾은 이유였다. 지난번 경험에서 전문성을 갖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며 매일 블로그에서 자기 홍보에 열을 올리지 않더라도 한 번 연락한 고객이 다시 자신을 찾도록 하는 것, 이것이 꾸준한 일거리를 유지하는 사장님만의 확실한 영업 전략이었다. 인생은 역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다시금 깨닫는다. 대체할 수 없는 ‘누수 해결사’는 4차 산업 혁명과 AI의 위협에서도 결코 사라질 수 없을 테니까.

“아들~ 원인을 찾았다고? 아빠가 안 가도 된다고? 알았어.” 때마침 걸려 온 전화를 끊고 어제는 아들이 하루에 100만 원을 벌었다며 뿌듯해한다. 아들은 건실한 중견기업을 다니다 최근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아직은 들쭉날쭉한 소득을 사장님이 보전해 주며 독립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톡톡하게 누리는 아빠 찬스였다.

배관공이면서 한 사람의 아들이자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을 넘어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사장님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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