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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도락 Apr 24. 2023

나는 왜 남편에게만 화가 날까 / ft.아이 양말

또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말았다.  

화가 난 지점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주말이다. 일단 남편이 없는 주말이 내겐 부담으로 다가온다. (어제도 오늘도)

아이들에게 주말 다운 주말을 보내줘야 한다는 압박감과 동시에 둘 데리고 뭘 하나. 어딜 가야 할까.      

날씨는 황사로 뒤덮여 있다. 공원 한 바퀴 돌고 오는 것도 수십 번 고민이 된다. 

남편이 오후에 오니까 그때까지 버티다 같이 나갈까?  

    


오전 11시 즈음까진 어찌 저찌 버텨본다. 

TV 동물농장도 보고, 지도를 그려 보물찾기 놀이도 하고, 사다리 게임 보드게임도 하고. 끈으로 셋이 들어가 기차놀이도 한다. 점심까지 먹고 나니   

아이들의 재미와 심심함은 무르익어가고 별안간 싸우는 소리에 엄마 이리 와봐 저리 와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뭘 떨어뜨리는 소리에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야, 너희들 그만 뛰고 앉아서 다녀! (5년차 층간소음 프로 예민러)      

이미 예민해진 나는 또 놀이처럼 진짜 앉아서 다니는 아이들 모습에 금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잘 노는 아이들을 집에 가둬두면서 뛴다고 화만 내는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식당 놀이를 하다 신발장으로 향하는 아이. 

엄마 나 이것 좀 꺼내줘. 물총이다. 난데없이 물총이다.  

엄마 나 화장실에 물 쏴도 돼 ? 

그래. 싸봐. 둘째까지 합세해 재밌게 쏜다. 가끔 거실 방향으로 한 번씩 쏘기도 하고.      

물총 싸러 나가자.      

남편이 올 시간이 된다. 해변 공원으로 나갔다 오자고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 나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물총 쏘러는 나가고 싶어. 언제가 언제가. 잔뜩 신이 나 있다.      

아빠가 오려면 30분도 더 남았는데 이미 신발장에 나가 거울에 쏘고 대문에 쏘며 낄낄거리는 아이들. 안 되겠다. 1층에 나가 나무에 물이라도 줘야겠다. 문 밖을 나가려 하는 데 아이가 화장실로 향한다. 남편은 시댁에서 가져온 음식이 있어 정리할 그릇을 찾아 놓으라 한다. 남편 집에 오면 같이 나가야겠다. 십 여분을 더 기다려 남편이 오고 가져온 음식들을 정리한다.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자 큰 아이는 어느새 쪼르르 의자로 가서 읽던 책을 펼친다. 둘째는 그 옆에 앉아 상황을 살피다 “우리 물총 싸러 안 가?”라고 묻는다. 아니, 가야지.      

큰 아이는 책 좀만 더 본다고 하고 

남편은 자긴 다 챙겼다며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본다.      


이미 이 상황부터 나는 맥이 빠진 것 같다. 

물총 놀이가 비눗방울처럼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기분.       

그렇게 시간을 더 보내고 이제 가자! 드디어 나간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남편이 “율이 양말 신어야지.”

나는 그냥 가자고 했고. 남편은 안으로 들어갔다. 휴우.        

나는 모래 있고 물 있는 해변공원으로 가고 물총 싸러 가니

양말은 어차피 벗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신고 있었으면 신고 갔겠지만.      

아침부터 쌓였던 스트레스가 

마지막까지 걸리는 브레이크에 짜증이 폭발해 버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나면서 남편의 행동에 가기 싫어진다. 

나 안 가요. 라고 한다. 표정을 숨길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깟 양말 좀 가져오면 어때서.라고 생각은 되지만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다시 짜증이 올라왔을 거 같다.      

남편의 장점으로 생각을 전환해 본다. 

우리 남편은 여행 갈 때 4인 가족 짐을 혼자 다 쌀 수 있을 정도로 (내게는 당신 옷만 챙겨 주세요 라고 한다) 꼼꼼하다. 그래서 나는 짐 챙기는 걱정을 따로 하지 않는다. 흠. 그래.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려 생각을 전환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      

분명히 짜증은 났지만 그 순간을 참지 못해 아이들의 물총놀이 시간을 빼앗을 뻔했다. 

기분을 다스린다는 것. 여전히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에선 더 그렇다.  언제쯤 욱하는 기분을 다스릴 수 있는 어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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