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첫째는 복잡한 서울에서 호기롭게 차를 끌고 나왔다 주차된 차를 긁고 진땀깨나 흘리던 스무 살 언저리 대학 동기들의 모습을 종종 봤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어떻게든 복학 시기를 맞춰 운전병으로 비집고 들어간 군생활 때문이었다. 내게 핸들을 잡는다는 것은 곧 언제든 스트레스받을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강화도에 와서 새롭게 발견한 건 알고 보니 내가 운전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좋아졌다는 게 더 정확하지만 나는 내가 평생 운전을 즐기지 못할 줄 알았기에 꽤 새로운 발견이었다.
특히 야근을 마치고 한껏 같잖은 비애에 젖어서하는 운전이 좋다. 한적하고 깜깜한 도로가 시야 아래로 빠르게 사라져 가는 걸 보면 마치 비행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사방에 빛이라곤 없이 헤드라이트가 비춘 만큼만 볼 수 있으니 바닥 없는 어딘가를 떠가는 기분인 것이다. 여러모로 어딘가 발 붙이고 사는 데 영 취미가 없는 붕 뜬 인간에게 딱 어울리는 취미가 생겼다.
어딘가 훌쩍 떠나기엔 내일 출근이 두려운 겁쟁이기 때문에 먼 곳을 가진 못한다. 목적지는 대부분 10분 정도 거리의 캠핑장을 겸한 주차장인데 거기서 보이는 밤바다는 꽤 좋다. 바다 같지도 않고 무슨 저수지 같은 비루함이 좋다. 그리고 그 풍경이 의외로 나쁘지 않다. 물론 낮에도 좋은데 주말이면 왕복 이차선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 버리는 관광지인 이 곳에서 오가는 길이 한적하다는 장점은 덤이다.
생각이 복잡하거나 뭔가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으면 종종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쉽게 그렇게 되도록 생겨먹었기 때문에 자주 간다. 당연히 가서 밤바다 좀 본다고 ‘고민이 뿅 하고 해결되었답니다. 하하!’ 같은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불빛이나 파란 하늘을 보며 잠깐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스스로의 비참함을 어떻게든 끄집어내 그 안에 잠기는 나쁜 버릇을 슬쩍 밀어낼 수 있을 거라는 용기는 생긴다.
오늘의 그곳은 겨울 냄새가 잔뜩 났다. 콧속으로 한껏 차가운 공기를 넣으니 그 조용한 풍경도 코를 타고 머리에 들어차는 기분이었다. 덤벨을 들 에너지가 생겨 집에 돌아와 운동을 했다. 새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나는 몸이 조금 더 좋아질 것이고 그래도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는 손톱 같은 보람을 간직할 것이고 내일은 또 비슷하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은 하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