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퇴근을 해 집에 돌아오니 문 앞에 보건소 스티커가 붙은 모기 기피제가 놓여 있었다. 공공 보건의 근면함과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시골은 시골이구나 하는 실감이 새삼 났다. 기피제는 본래의 용도보다는 살충제 사는 걸 몇 번이고 까먹은 게으름 탓에 주로 살충제로 쓰였는데 곤충에 대한 뛰어난 살상력을 보여줬다. 몸에 뿌리는 용도의 ‘기피제’ 치고는 너무 위력이 강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효과는 확실했고 나는 아픈 곳이 없으니 반 년동안 감사히 썼다.
겨울이 되자 이 집에는 개미가 출몰하기 시작했는데, 초여름의 흰개미와 가을 이후의 쥐며느리에 이은 골칫덩이였다. 물론 개미들이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진 않지만 십수마리씩 나오는 검고 작고 꾸물거리는 형체가 달가운 사람은 곤충학자를 제외하고는 없을 거다. 하여튼 먹을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모여드는지, 인간으로서는 당최 알 수 없었다. 그들, 아니 개미니까 그녀들이 정확하겠다. 아무튼 개미들만의 핫플레이스를 정하는 법칙이라도 있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그런 사색이 자비심 같은 걸로 이어지진 않았고 여기서 저 기피제는 대활약을 펼치게 된다. 한 번 뿌려놓으면 몇 주정도 지속하며 개미의 시체를 쌓아놓는 위용이라니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이미 나와 있던 개미들 만이 아니라 새로 그곳을 밟는 개미들도 마치 살충제 광고처럼 죽어나갔고 나는 기다리다 청소기만 돌리면 되었다.
흔히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은 없다고들 한다. 거기서 흔치 않은 반례가 되는 영화들이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의 두 번째 작품이다. 공포영화에 가까웠던 전편들의 방향을 틀어 물량과 규모가 커진 액션 영화로 선회한 제임스 카메론의 선택은 적중했고, 아직 1편을 능가하는 2편의 예로 회자되고는 한다. 살충제 이야기를 하다 왜 갑자기 개소리를 하냐면 이 집에도 전편을 능가하는 규모의 공습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흰개미가 돌아왔다. 성공하는 속편의 법칙을 참 부지런히도 챙겨서.
어느 날 벽지가 조금 파여 있는 것을 보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왜인지 파인 것이 점점 커지는 게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흰개미 군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름의 유시충 상태와는 달리 정말로 흰 빛을 띈 흰개미 군단은 더 큰 규모로 돌아와 버렸다. 밖으로 나오는 흰개미가 무서워 테이프로 막아놓은 것이 패착이었다. 테이프 아래의 공간은 일종의 온실이 되어 흰개미가 겨울을 버틸만한 온도가 되어버렸고 그들은 뛰어난 생존력으로 벽지를 먹으며 버틴 것이다.
아직 방역 업체를 부르긴 부담되는 내가 선택한 방법은 대규모 화학전이었다. 테이프와 장판을 들춰 기피제를 대량으로 살포하였고 거의 ‘흰개미 스리마일 섬’ 수준의 생존 불가 지역을 만들어놓았다. 장판 밑의 흰개미 군단은 정말이지 굉장했다. 안 보이면 괜찮겠거니 했던 게 더 큰 화근이 되어버리다니 참 클래식한 클리셰이지만 계속 반복되어졌고 반복될 실수이기도 하다.
지금은 일단 약을 뿌려놓고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다. 흰개미, 쥐며느리, 개미, 그리마를 끊임없이 내놓고 있는 저 장판 밑은 대체 어떤 우주란 말인가. 제발 방역업체로 규모를 확대해야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규모를 키운다고 동어 반복의 3편이 재미있어지지는 않으니까. 나는 충분히 규모가 늘어나 새 지평을 보여준 2부작 정도면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