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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 Nov 22. 2021

항상 걱정보단 낫다

어느 한가롭던 일요일 아침, 마당에 나가 멍하니 있는데 엄청 작은 회색 짐승이 내 뒤를 빠르게 스쳐 마당에 방치된 신발장 뒤로 숨었다. 그 크기에 색을 보니 쥐인가 싶었는데 왠걸, 아기 고양이였다. 바깥 생활에 지저분해진 녀석의 검은 털이 회색으로 보인 것이다. 혼자서 생존하기는 힘든 나이로 보였고, 끊어진 노끈이 목에 매어져 있는 걸로 보아 사정은 몰라도 사람에게 붙잡혀 살다 탈출한 듯 보였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어미를 찾아주긴 글렀구나 싶어 일단은 잡아두기로 했다. 아기 고양이는 전혀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는지 구석으로 도망다니다가 소위 '침을 뱉는다'고 표현하는, 위협음을 내기는 했으나 어렵지 않게 잡혔고, 급한대로 박스에 따뜻한 물을 담은 병과 함께 넣어 방에 두었다. 


고양이를 잡아두고 마당으로 다시 나오니 옆집 할머니께서 고양이를 키우겠냐고 물어보신다. 이웃에서 새끼 고양이를 하나 잡아와 일단 추울까봐 비닐하우스에 묶어두었다는 것이다. 그 고양이가 목줄을 끊고 탈출해 내게 잡혔다. 그렇게 녀석의 목에 매여 있던 노끈의 정체는 쉽게 밝혀졌다. 


부랴부랴 동네 잡화점에서 습식 사료부터 샀다. 그런데 이 놈, 밥을 주는 것도 만만치 않다. 경계가 심해 하악질과 위협을 사람만 눈에 보이면 해대는 것이다. 말 그대로 주먹만한 짐승이지만 기세가 만만찮아 녀석이 '테엣!'소리를 낼 때매다 화들짝 놀라 주던 물그릇을 엎고는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고양이 순화에 대한 여러 영상과 글들을 봤지만 당연히 당장 효과가 있는 것들은 없었다. 인내심이 무지하게 없어 많은 것을 그르치는 나이지만 조금 긴 호흡으로 인내심을 갖기로 했다. 


다음날인 월요일이 되자 바로 병원에 먼저 들렀다. 천만 다행으로 아픈 곳이나 질병의 흔적은 없다고 한다. 게다가 건사료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시기라고 하니 평일에 출근해야 하는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화장실도 곧잘 가는 녀석을 보며 곧 치과를 가야하는 나의 잔고에 대한 걱정은 덜었다.


여전히 매우 화가난 눈빛. 너 따위의 호의는 필요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보인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와 눈만 마주치면 '너 때문에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듯 몹시 화를 내는 녀석을 보며 다른 걱정이 생겼다. 물론 아기 고양이는 그런 경우가 드물지만 긴 세대를 야생에서 산 고양이들의 경우 소위 '순화'를 시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언감생심 개냥이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서로 소 닭보듯 무관심한 정도면 만족할 수 있었는데, 내게 관심은 있으나 그 관심의 방향이 매우 무서운 녀석과 함께 사는 처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 아기 고양이지만 어느 정도 덩치가 생긴 상태에서 작정하고 덤비면 꽤 버거운 상대가 될텐데 어쩌나 싶었다. 비글을 십수년간 길러 본 입장에서 '코카 스파니엘 사이즈만 되어도 작정하고 덤비면 제압하기 힘들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내게 어느 만화에서 본 '철장에 사람과 고양이를 가둬놓고 싸우게 하면 사람은 일본도를 들어야 대등한 싸움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가 화난 모습을 보면 그게 마냥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찌됐든 내가 안고 갈 녀석이니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나를 보며 잔뜩 화가 난 모습이나 콧수염을 닮은 코 아래 얼룩을 감안해 녀석에게 '조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오시프'의 영어식 발음이다.




침대의 따뜻함을 깨달았다.


다행히 거의 한달이 지난 지금의 모습으로 보았을 때 조셉이 나와 자웅을 겨루려고 들지는 않을 것 같다. 여전히 마주치면 도망갈 때가 많지만 이젠 내가 옷을 갈아 입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하고 앞발로 날 톡톡 건드리며 장난을 치기도 하며 밤엔 꼭 침대로 올라와 함께 잔다. 예방 접종을 맞을 때도 매우 얌전해 수의사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물론 평소엔 손도 안타는 녀석이 새벽에 깨어나 몹시 큰 소리로 골골거리며 자신을 쓰다듬으라고 손에 머리를 들이미는 통에 수면의 질이 조금 나빠졌지만 신변의 위협보다는 훨씬 낫다.


당장 어떤 일과 맞닥뜨리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이야기를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불신하게 된다. 또한 실제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가 걱정하던 것들은 충분한 시간과 인내심, 선한 의지가 해결해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또 잊겠지만 이젠 고양이 조셉이 내 곁에 있으니 그 사실을 좀 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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