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종종 2-3일간 모습을 보이지 않고는 했다. 길을 건너다 나쁜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지, 출퇴근을 하며 도로를 유심히 살피곤 했다. 내 우려가 무색하게 녀석은 이내 나타나 밥을 달라는 건지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건지 길고 큰 소리로 울어댔고 나는 녀석이 며칠쯤 보이지 않더라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우리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내가 서 있을 때만 다가오던 녀석은 내가 손을 내밀어도 움츠러들지 않고 머리를 들이밀었고 녀석과의 인사는 당연한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따뜻한 가을볕을 밭으며 노랑빛 고양이의 거친 털과 체온을 느끼는 기분이 썩 좋았다. 이따금 옆얼굴을 부빌 때 느껴지는 송곳니의 느낌도, 가끔 핥아줄 때 느껴지는 따가운 혀의 느낌도 좋았다. 책임지는 것이 싫다면서도 나를 경계하던 존재와 서서히 가까워져 간다는 생각은 고여 있는 것만 같던 내게 새로운 시작이 있겠구나 하는, 뭔가가 살짝 반짝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여느 아침처럼 현관을 나서니 주말 동안 보이지 않던 고양이가 처마 밑에서 볕을 받고 있었다. 밥과 물을 떠 녀석에게 다가가는데 평소와 크게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울지도 않고 우두커니 앉아 눈을 반쯤 감고 있었던 것이다. 쓰다듬는 손길에도 힘 없이 앉아 있는 녀석의 발치에 물그릇을 가져다주었다. 침을 흘린다거나 출혈이 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아픈 고양이를 처음 보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동물 병원이 문을 열려면 최소한 9시 30분은 되어야 하고 강화에서 그나마 가까운 동물병원이 있는 김포에 가려면 30분은 걸린다. 결국 녀석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선 나는 조퇴를 하거나 연가를 신청해야 한다. 내게는 불가능한 선택지다. 출근 시간은 다가왔고 여전히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퇴근까지만 버텨주길 바랐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빈 밥그릇만 놓여 있고 녀석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무릅쓰고 그날 아침 동물병원을 갔어야 했을까. 괜한 연민으로 녀석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 잘한 일이었을까. 길 위의 삶이 위태로움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나. 나는 여전히 비겁하구나. 조금은 가까워진다는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도망만 치고 있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녀석이 잠깐 앓다 여느 때처럼 돌아오길 바라는 해진 믿음을 가지는 것 밖에는 없다. 물론 앞은 알 수 없는 것이고 나는 또 무언가와 가까워지겠지만, 여전히 무거운 일이었구나. 다른 관계도 이렇게 끝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의 나쁜 습관이 또 시작되고 만다. 고양이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기는 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