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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 태어난 작가 Mar 30. 2023

02. 소설을 쓰다.

내 나이 열 살. 어린 왕자 속 어른들을 만났다.

아직도 내 인생의 첫 소설이 기억이 난다.


사실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작은 수첩에 심지어 반장분량의 내용이었다.


당시 나는 열 살로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그때까진 저학년이기 때문에 점심만 먹으면 하교였다. 신발주머니를 휘날리며 집에 와 신나게 만화를 보고 컴퓨터 게임을 했더랬다.


그런데, 컴퓨터에 앉은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아 날라리 둘째 언니가 집에 들어왔다. 2시도 안 된 시각이었고, 당시 둘째 언니는 16살, 중3이었다.


그 길로 난 컴퓨터를 뺏겼다. 그놈의 네이트온. 난 하지도 않았는데 재수가 없다.


아무튼, 난 언니에게 한 번 대들지도 못하고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리곤 내 옷장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간략한 내용은 언니가 나(화자)의 컴퓨터를 빼앗고는 바나나킥을 사 오라고 시켰으며, 불쌍하고 어린 가여운 아이는 군말 없이 도보 30분이나 걸리는,  왕복 1시간이 걸리는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처음에 나는 자기가 왜 집을 나서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와서 꽃나무를 보고, 다리를 건너고 신호를 건너면서는 화도 사라지고 집 밖에 나온 게 마냥 기뻐서 룰루랄라 바나나킥을 사다 먹는, 그런 아이의 이야기.


이것만 보면 이게 무슨 소설인가, 일기 아닌가 싶겠지만 이건 엄연한 소설이다. 언니에게 컴퓨터자리를 빼앗긴 건 맞지만 바나나킥을 사러 간 적도 먹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내 최초의 소설이다. 내 상상만으로 쓴 이야기였다.

주제도, 기승전결도 없는 것 같지만 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컴퓨터를 빼앗긴 것도 잊고 언니에게 내가 쓴 글을 자랑했다.


언니는 네가 언제 나갔고 바나나킥을 먹었냐며, 거짓말로 일기를 쓰지 말라고 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 어른들에게 내 소설은 그저 거짓으로 쓴 일기였다. 심지어 어떤 언니는 이 일기솜씨로 자신의 일기를 대신 써달라고 까지 했다.


언니도, 다른 언니도, 어른들도 어린 왕자의 어른들 같은 사람이다. 보아뱀 속 코끼리를 보지 못하고 상자 속 양을 보지 못한다. 


어린 왕자를 읽을 적엔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이 그 순간 생각나며 어린 왕자가 너무 외롭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감정을 온전히, 그리고 이성적으로 표현할 수 없던 나는 언니에게 마냥 코끼리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언니는 자기 보고 코끼리라고 한 거냐며 나에게 욕을 퍼부었다. 다행히 언니가 쓴 욕은 엄청난 바리에이션이 가미된 당시 중학생들 사이에 통용되는 암호 같은 욕이었기에 난 알아듣지 못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까지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뭐 이러한 이유로 다음 소설이나 글부터는 둘째 언니에게 단 한 번도 내 글을 보여준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물론 지금은 본인이 거절한다. 책 읽는 게 귀찮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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