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편견을 부순다.’
동네 친구로부터 카톡이 하나 날아왔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공고였는데, 친구는 조건이 꽤 괜찮다면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돈이 필요하긴 했지만 택배 상하차만큼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상하차를 뛰고 온 친구들은 하나같이 푸념을 술잔에 채웠다. “와, 허리를 계속 펴고 굽히는데 허리가 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너무 힘들어서 쉬는 시간에 진짜 추노(휴식 시간에 몰래 도망가는 행위)하고 싶었어.” “한 3시간 정도 지났거니 해서 시간을 봤거든, 근데 3시간은 개뿔 겨우 1시간 지나있더라.” 세상에 쉬운 알바 없다지만 상하차에 대한 평가는 유독 야박했다.
주변에서 하도 그러다보니 상하차 아르바이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 마지못해 이응 두 개를 카톡으로 보냈다. 알바 당일,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게 이런 기분일까. 목적지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친구의 새치 혀에 넘어간 내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팼다.
물류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건 내 키의 2배 정도의 높이로 쌓여진 상자 탑들이었다. 저것들을 전부 실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할 허리에게 미리 사과했다. 나는 상차 업무에 배정됐다. 택배 상자들을 화물칸에 실으면 됐다. 상자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빠른 속도로 밀려 들어왔다. 어깻죽지와 허리를 풀고 팔과 허리에 힘을 준 채 첫 상자를 들었다. 다행히 준 힘이 무색할 만큼 상자는 쉽게 내 품에 안겼다.
그러나 쪽수 앞에 장사 없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자 군단의 물량은 어마어마해졌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쭉쭉 들어오는 그들의 기세는 지친 기색이 없었으며 쉴 새 없이 나를 공격했다. 아무리 상자가 들 만 하더라도 허리를 계속 굽혔다 펴면 무리가 오기 마련이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끙끙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같은 조에 배정된 물류 센터 직원 분이 말을 걸었다. 무게가 있는 상자는 굳이 위로 쌓으려 하지 말고 바닥에 두라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굳이 무게가 나가는 걸 위로 올려보겠다고 애쓰고 있으니 허리가 아플 수밖에. 요령을 배우니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자들을 쌓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근무가 막바지에 이르자 상자 군단의 물량도 바닥을 보였다. 마침내 마지막 상자를 태운 화물차가 물류 센터를 떠났다. 굽어 있던 허리를 뒤로 크게 젖히며 기지개를 쫙 폈다. 허리가 살짝 뻐근하긴 했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어느새 깜깜해진 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를 곱씹었다. 지하철을 탈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화물칸 안에 들어가 있던 6시간은 피크 타임 2~3시간을 제외하면 전혀 힘들지 않았다. 피크 타임도 요령을 터득하니 견딜 만 했다. 겨우 이거 가지고 그렇게 긴장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을 수 있던 건 경험 덕분이었다. 나는 내가 일을 마치고 웃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택배 상하차는 ‘힘들다’라는 편견에서 나온 두려움과 긴장감이 얼굴을 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견고할 것 같았던 편견은 경험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깨졌다. 두려움은 사라졌고 그 빈 자리를 언제든지 다시 한 번 상하차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돈을 벌었다는 기쁨이 채웠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번에는 내가 친구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다음 주에 한 번 더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