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눈을 기대할 수가 없다. 겨울에도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때 온도가 높은 편이고, 다른 곳에 눈이 내리면 이곳은 비가 내린다. 아이들에게 "외갓집은 눈이 왔대."라고 말하면, 당장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보러 가자고 성화다. 한달 전쯤, 다이소에서 눈을 뭉치는 장난감 기계를 사왔다. 사주면서도 이것을 사용할 날이 올지는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주어진다면 오리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뛰쳐 나걸 것이다.
오후 다섯 시라 표현할까, 저녁 다섯 시라 표현할까. 겨울의 다섯 시는 제법 어둑하다. 눈이 내리는 서점을 썸네일로 한 유튜브의 음악을 들으면서, 저 거리에 내가 서 있을 수 있다면, 하고 상상해본다.
머리와 어깨로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서둘러 찾아간 서점 안은 훈기가 가득하다. 문을 열때 딸랑거린 종소리 탓에 서점의 직원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이 시간, 이 날씨에 사람들은 서점을 찾지 않는 것이다. 고요한 서점을 찾아온 손님을 반기는 직원의 눈빛에 감사해하며 가볍게 목례를 한다.
아무리 뒤져봐도 내가 찾는 시집이 없다. 그에게 다가가 그 시집의 행방을 묻는다. 한참동안 정성스럽게 시집을 찾는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미안해서 어쩌죠. 저희 서점에는 손님이 찾으시는 책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그냥 나오기 아쉬워서 조금 더 둘러본다. 무심코 펼친 책 속에서 단 한 줄이라도 마음을 이끄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 책을 사서 나오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열심히 책을 들쳐본다.
그러는 동안, 창밖의 거리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가로등에 불이 켜지면서 불빛 속에서 거세지는 눈발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듬성듬성 보이는 사람들은 곧장 사라진다. 바닥에 떨어진 눈이 쌓일 겨를 없이 녹는 것처럼, 사람들도 밀려왔다가 금세 없어지는 것이다.
긴 정적 속에서 서점 안의 종소리가 울릴 때면, 나도 모르게 직원처럼 고개를 든다.
서점 입구에서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한 발을 디딘 그는, 젖은 눈빛을 하고 있다.
서점을 찾는 이들은 책 속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론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