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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Aug 28. 2024

[시] 헌정


<헌정>



당신의 두 손 위에 한 권의 시집을 바칠 수 있다면

맨 앞 표지에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푸치니 식으로 당신의 이름을 올리겠어요

당신이 살아 생전에 딸이 꿈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번 남은 생을 걸고 맹세했어요

삶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우상은 없다고.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부서뜨릴 것이라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간다해도 어쩔 수 없다고,

그래도 당신께 바칠 수 있는 시 한 편은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슈만이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를 위해 가곡을 지은 것처럼

저는 아버지께 눈물의 시를 바치려고 해요.

이제 아버지와 함께 산 날보다 떨어져 산 날이 더 많지만

앞으로도 그러할 테지만

전 늘 곁에 있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운명의 날이 정해져 있다해도

그날이 올 때까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연스럽게 늙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정이 깊으면 슬픔도 깊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배웠어요

저는 자식들에게 적당한 정과 적당한 슬픔을

가르치고 싶어요

깊지 않아도 좋으니, 가볍게

즐겁게, 쉽게,


하지만 저를 바라보는 자식들의 눈을 통해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아요


어쩔 수가 없는,

이것은 숙명일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언젠가 당신께 바칠 시의 제목은

헌정으로 할래요.


내어드릴게요.

그것이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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