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학교의 일정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우리 Preschool은 오후가 되면 스케줄이 조금 느슨해진다.
아이들은 Afternoon Tea를 먹고, 잠시 스토리 타임을 가진다.
그리고 나서 날이 좋으면 다 함께 나가서 다양한 종류의 체육 활동과
미술 및 독서 활동을 한다.
학교의 운동장에 다양한 짐나스틱 활동을 위한 기구들을 설치하고 나무그늘 그늘 아래엔
돗자리를 깔아 그 달의 계획된 프로젝트의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몇가지 나열해 독서 코너를 만들고,
반대편에는 테이블 두개를 놓고 그림 그리기와 콜라쥬 만들기를 할 수 있도록 셋업을 해 놓으면
간식을 먹은 아이들이 하나 둘 씩 줄을 지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의 아웃도어 셋업 담당자는 나였다.
점심시간에 본 엄마의 카톡메세지가 자꾸 마음을 찔러댔지만
나는 최대한 오늘의 교육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먼저, 거대한 나무 판 두개를 큰 프레임에 연결해서 미끄럼틀을 만들고
그 옆에 높은 짐나스틱 봉을 연결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용 메트리스를 까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래사장과 연결된 나무 계단에는 대나무 램프를 몇개 꽃아 놓았다.
그 옆에는 작은 삽과 버켓들을 놓고 터널을 만들 수 있는 건축용 플라스틱 관도 두었다.
장난감 화물차와 포크레인도 이리저리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배치해 두었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와서 서로 도와가며 땅꿀을 파고 그 굴을 연결할 통로를 만들고 터널도 지을 것이다.
그 이후엔 자동차를 가지고 놀겠지.
북 코너엔 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과 여행에 관련된 책들을 놓았다.
그림 코너엔 핸드 페인팅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물감들을 조금씩 팔레트에 붓고, 물통과 손을 닦을 수 있는 물수건을 구비해 두었다.
마지막으로 콜라쥬 색션에는 종이접기를 할 수 있도록 색종이와 가위, 풀 그리고 색색의 깃털, 모래자갈, 단추 따위를 나열해 놓았다.
모든 작업을 30분 내에 마쳤다.
해를 가리기 위해 쓴 썬 캡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호주는 막 겨울이 끝나고 봄을 맞으려는 중이다.
어떤 날은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어떤 날은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오늘은 전자였다.
몇몇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애쉴리가 막 운동장으로 통하는 문을 열며 나를 향해 엄지를 들어보였다.
"Beautiful! Great work, Bell!"
"Thanks."
나는 그녀에게 웃어보이고 아이들에게 얼른 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 때 에밀리가 나에게 다가와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아싸!'
이런 더운날은 북 코너가 최고 명당이었다.
운이 나쁜 선생님은 개구장이 녀석들과 아마 몇시간은 모래를 파야할 것이다.
나는 에밀리 손에 끌려 북코너로 가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엄마의 카톡메세지와 꿀꿀한 기분은 이미 까맣게 잊혀진 후였다.
학교 일정을 다 마치고 퇴근하는 길.
나는 집으로 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한 달 전의 마지막 통화가 다시 떠오르며 마음이 불편했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로 했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님 늘 그렇듯 내가 화가 났었다는 사실을 또 까먹은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연결음을 듣는 데,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큰 딸?"
"응. 잘 지냈어요?"
"응...우리 딸 지금 통화 괜찮아?"
"괜찮으니까 전화했지."
"혹시나 운전 중인가..해서, 그럼 나중에 통화하려고."
"맞아. 운전중이야, 그치만 익숙한 길이니까 괜찮아, 말해요."
엄마는 이상하리만치 뜸을 들였다.
성격이 매우 급한 사람이라 어떤 일에든 둘러가는 법이 없는 그녀의 평소 언행을 생각하면
기묘한 침묵이었다.
결국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깬 것은 나였다.
"엄마! 할말이 있다면서요."
"응....놀라지 말고 들어줘."
"알겠어."
"엄마... 아무래도 암에 걸린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