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소중하니까요
새로운 다이어리에 새해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당연히 계획의 대부분은 승무원이 되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렇게 리스트를 써 내려가던 중 대부분이 승무원 준비에 있어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점들에 관한 것임을 발견했다.
돌아보니 그럴 만도 하다. 으레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 날 따라 좋지 못했던 컨디션, 자연광에 드러났을 적나라한 피부 상태, 잘 나가다 마지막에 꼬여버린 대답 등등.
그렇게 항상 기억력이 뒷받침하는 한 나노 단위로 면접을 돌아보았다. 그 나노 단위의 회상은 대부분 표정, 말투, 행동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나의 부족한 점과 연결 짓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심지어 그 회상은 나라는 사람 자체가 거절당한 것이라며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단 이유로, 꼬리 질문이 쏟아졌다는 이유로 혹은 질문이 너무 적었단 이유로 ‘나를 싫어하나 봐.’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건 탈락의 원인을 찾으려다 보니 그런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면접 준비는 불완전한 나’를 전제로 하여 부족한 점을 채우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왔음을 깨달았다.
빼곡히 나열된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좋은 점만 보고 살아도 모자란 인생에서 부족한 점을 채우겠다는 이유로 결점 찾기만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태껏 그러한 시선으로만 나를 바라보았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어엿비 느껴졌다.
잠시 펜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과연 부족한 점만 채우는 게 올바른 면접 준비인가. 부족한 점의 상대 개념인 강점을 활용할 수는 없는 걸까?
분명 나에게도 강점이 있을 텐데, 내가 지금껏 주목하지 못한 강점을 발견한다거나 이미 존재하는 강점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면접 준비의 한 방법이 아닐까?
그렇게 지난날을 돌아보니 강점에 대하여 고민해 본 적이라고는 what is your strength? (당신의 장점은 무엇입니까?)에 대한 답을 달던 때뿐이었다.
사실 그것도 내가 가진 제1의 장점이라 말하긴 애매했다. 일명 면접용 장점이라고 자랑은 아니지만 적당히 구체적이면서 단점의 꼬투리가 잡히지 않을 법한 그런 면을 선별해 장점이란 말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ㅇㅇㅇ으로서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부족한 점을 나열하는 건 그렇게도 쉬웠는데 강점을 적자니 1번을 써내려 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강점 또한 바라보자고 마음을 먹으니, 긴 시간 헤매 온 자존감이란 어두운 터널에서 빛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오직 나를 위한 나만의 의식적인 노력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겪은 위의 고민들은 융의 심리학을 통해 설명이 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름하여 <페르소나와 자아 간의 동일시에 따른 혼란>
그의 심리학 이론을 접하고 나니 긴 시간 홀로 고민하며 이어온 원인 미상의 시간에 대한 마음의 처방전을 받은 느낌이었다.
융의 처방전에 따르면 나의 지난 시간들은 승무원 준비생이라는 나의 페르소나와 자아 간의 경계가 점점 흐려짐에 따라 발생하는 혼란이었다.
그리고 어느 면접에서의 탈락은 나의 승무원 준비생이라는 페르소나가 그날 그들의 기준의 맞지 않은 것이지 나의 자아가 부정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도.
만약 지난날의 나처럼 승무원 준비생이라는 페르소나와 자아 사이에 구분이 흐려짐을 느낀다면, 잠시 멈추고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결점보다는 스스로의 장점에 집중해서 채워간다면 복잡한 마음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지난날은 결점을 찾는데 투자한 시간들에 비하면 강점을 돌아본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라는 면접자가 면접관들이 원하는 ‘기준’에 맞지 않아 탈락된 것이라는 생각에 닿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면접은 면접일뿐이고 승무원 준비생으로서의 나는 나와 다르다. 그러니 나의 면접자 페르소나와 나라는 사람 자체를 동일시하지 말자.
승무원 준비에만 몰입하여 부족한 점을 찾는 태도가 스스로를 잠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를. 그리고 보완할 점을 찾아내는 만큼 스스로의 강점도 발견해 주기를.
당신은 소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