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210일(2022.12.06)
새벽 4시에 일어나 월드컵 16강전을 보고서 눈도 붙이지 못한 채 바로 출근을 했다. 뻔한 결과였지만 무슨 애국심이 발동했는지 본방을 사수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의무감은 여전히 유효했다. 고3 수험생 시절이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온 가족이 잠든 새벽에 홀로 일어나 아무도 모르게 방구석에서 조예선을 보던 버릇이 남았던 것일까?
그때에는 무어라도 핑곗거리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만한 그럴듯한 명분 말이다. 나는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를 전승으로 우승했던 LG 트윈스 영광의 시절, 1990년의 프로야구 최종전을 잠실에서 직관했다. 한국시리즈 결과 예측 내기에서도 유일하게 4전 전승에 걸었던 덕에 대입학력고사를 코앞에 둔 어느 날 친구들에게 치맥을 쏘기까지 했다.
지금이 그때와 같을 리 없는데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면서, 국내외 어떤 프로축구리그도(심지어 토트넘 경기조차) 따로 챙겨보지 않는 야구광인 내가 왜 새벽부터 일어나 브라질전을 관전했을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사흘 전 벌어진 조예선 3차전, 포르투갈과의 명승부에 대한 예우였을 것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경기를 관전했던 나에게 드라마보다 짜릿한 역전극을 선사했던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 말이다.
다음날(?) 새벽부터 예정된 가족여행 일정을 고려하면, 나로서는 자정에 시작하는 3차전 관전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난 경기가 끝난 새벽 2시 이후에도 쉽게 잠에 들지 못해 채 3시간도 못 자고 일어나 장장 220km에 달하는 장거리 운전을 해버리고야 말았다. 그날의 경기를 관전한 이들이라면 그 일이 후회될 리 있겠는가? 뻔한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잠에 들지 않았던 내게 놀라운 반전을 선사했던 태극전사들에 대한 예우가 필요했다.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조규성, 황인범, 김민재, 김승규, 백승호..., 이들은 지겹게 우리를 괴롭힌 경우의 수를 극복했으며, 붕대투혼 따위로 씁쓸한 위안을 주지도 않았다. 그들은 국가를 대표해 월드컵에 나갔고 거기서 그들의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그들에게 투혼이나 애국심이 없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들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것으로 되었다. 우리도 4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를 즐기면 된다. 4대 1이면 어떤가? 그들은 지쳤지만 끝까지 품위를 지켰다. 그것으로 되었다.
* Image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