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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an 05. 2024

위기의 50대

마음 둘 곳이 없다면 당신은 위기

세상은 언제나 위기다. “居安思危(거안사위)”라 했던가? 언론에서는 매년 위기를 말한다. 기후변화로 지구는 종말의 시계가 초침에 의지할 판이고, 세계경제는 대공황을 우려할 만큼 어려우며, 국내에서는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불투명한 미래, 급변하는 외교안보 환경, 분열의 국내정치까지 악화일로를 걷는다고 연일 보도된다. 그 정보의 홍수 속에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대범한 이가 있을까?


한편으로는 위기가 일상이 되어버려 이제 어지간한 뉴스에는 둔감해진 면도 있다. 이렇듯 현대인은 365일 24시간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위기를 빼고는 일상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50대가 맞는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위기감은 이야깃거리도 못된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리의 눈과 귀와 촉각을 장악해 버린 탓이다. 그래서 몰랐다. 나에게 진정한 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엄습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2년이 어느 해보다 힘겨웠다는 건 알지만 그 바쁘고 정신없었던 시간들이 그저 내 주위의 환경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 입시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다가 느닷없는 아들의 우울증을 맞닥뜨린 재작년은 눈뜨고 코베인 기분이었다. 유독 삼재해를 찐하게 겪는 팔자라지만 이번에는 정말 역대급이었다. 그 가혹한 시련을 버텨내며 나는 내 안의 위기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아이의 우울증 투병을 지켜보며 멘탈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우울증도 생소했고 시시각각 돌변하는 아이의 상태를 돌보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주 절망했고 감정적으로 흔들렸다. 그런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조금씩 좋아졌고 가정도 평온을 찾아갔다. 거짓말처럼 달라졌다. 끝도 없이 추락하던 절망감은 바닥을 치더니 서서히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힘겨웠다. 아이에게 온통 쏠리던 정신을 조금 추스를 만 해 졌는데 나를 지배하던 우울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 나아진 아들 녀석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아빠는 많이 지쳤다고 말이다. 겨우 좋아진 아이한테 이런 위험한 이야기를 할 정도면 내 멘탈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극심한 가정의 위기를 이겨내려 버둥거리다가 내게 진정한 위기가 찾아온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50대의 초입에서 길을 잃었다. 내 삶을 지탱하던 신념들이 순식간에 흔들리고 폐기 직전까지 가는 일을 겪고서야 알게 되었다. 삶은 주관과 신념만으로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굳건한 심지가 어지간한 시련을 견디는 힘이 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난 자존감이 제법 강하고 주변의 환경이나 간섭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가족이 큰 힘이 되었지만 그만큼 내 손길이 필요한 존재였다. 그 막중한 의무감에서 벗어나 나도 어딘가에 기대고 싶을 때가 부지기수로 찾아왔지만 나에겐 완벽하게 그 대상이 차단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내는 자신을 추스르는 데에도 한계를 자주 드러내었고 아이를 보살피는 것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내게 감당해야 할 짐을 보태는 이에게 나를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모도 형제도 그랬다. 내 힘겨운 하소연을 들어줄 대상이 없었다. 아니 하소연을 늘어놓을 기운조차 없었기에 그저 마음 놓고 울고 싶을 때 잠시 어깨라도 내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완벽하게 고립되었고 온전히 혼자였다. 그 엄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처한 환경이 너무나 잔인했다. 사실 대부분의 대한민국 50대 가장이 나와 비슷한 처지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다.


나처럼 사면초가,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니거나 혹은 염치없이 누구라도 붙잡고 울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50대 남성이 힘들 때 잠시 기댈 수 있는, 마음 둘 곳을 갖기란 어렵다. 그 필요를 딱히 못 느끼거나 아니면 누구라도 붙잡고 기대고 있거나…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둘 다 아닌 나로서는 대략 난감하다. 어찌하여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마음 둘 곳 하나 구하지 못했는가? 난 각박하고 고약하게 살아온 것이다. 그 업을 누구에게 지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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