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산우공 Aug 16. 2024

It ain't over till It's over

요기베라와 삼재

오컬트 영화가 대세가 되어도 무속신앙에 별 감흥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삼재였다. 도대체 삼재가 어떤 연고로 규명되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나는 9년마다 반복되는 3년의 삼재에서 매번 인생의 바닥을 쳤다. 그리하여 50대에 맞는 삼재는 분명 어마어마할 것이라 지레짐작을 하면서 두려워했으나 미리 걱정해 보아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날삼재 세 번째 해가 지나고 있으며 나는 8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생각에 잠시 방심한 탓에 다시 한번 혹독한 시기를 맞아버렸다. 2주 전 왼쪽 허벅다리뼈가 부러진 내 어머니는 장장 세 시간 동안의 수술을 받고 그럭저럭 좋아지시는 것 같았는데 지난주 토요일을 계기로 다시 묵혀둔 지병이 터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시니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수년 전 가볍게 앓고 넘어간 뇌경색이 도졌으며 작년에 한 달 넘게 병원신세를 지게 했던 장염이 재발하고야 말았다. 수술 후 염증치료를 위해 처방한 항생제가 오히려 장염을 일으키게 한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은 항생제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항생제를 못쓰면 염증은 어떻게 잡을까? 염증수치가 안 떨어지면 패혈증이 올 수 있고 그러면 정말 손쓸 도리가 없다는데...


어제도 밤새 잠을 못 이루고 간호병동에 전화를 했지만 조금 떨어졌던 열은 오늘부로 다시 수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가고야 말았다. 내가 삼재를 끔찍하게 겪으면서도 한가닥 희망을 갖는 이유는 하나다. 죽을 듯이 고생스럽긴 해도 언제나 결과는 좋았기 때문이다. 그 믿음에 균열이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불안하고 근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내가 언제부터 어머니에게 이렇게 간절했는가 돌이켜보니 그분에 대한 애틋함보다는 이 시기에 대한 엄중함이 컸다. 언젠가 돌아가시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이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섬망증상이 심해졌고 우울증에 걸린 내 아이를 붙잡고 유언(?)을 남기려 하셨다. 할머니를 끔찍이 챙기던 아이는 이제 할머니 문병도 올 수 없다.


20대 후반에 맞았던 삼재와 40고개에서 맞았던 삼재를 돌아보았다. 모두 날삼재 8월에 극심하게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이 비로소 떠올랐다. 이번에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 끝물에 들이닥친 몸살이리라. 잘 견디면 평안해지리라. 아무 근거도 없는 믿음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틴다. 내 믿음의 뿌리는 주역이다. 하늘이 내린 운명을 거부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순리대로 풀릴 것이라는 믿음이다.


오십에 팔자가 꼬이는 건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게 무엇이든 거부하지 않겠다. 거부해 보아야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내 꼬인 팔자를 풀어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애가 탄다.


집수리한 지 5개월이 안되어 거실 천장 한복판에 물이 샜다. 헛웃음도 안 나오는 그 상황에서 나는 침착하게 관리사무소와 인테리어업체와 위층 부부 사이에서 이 현상을 대처했고 딱 3일 만에 문제가 해결됐다. 이제 물자국이 남은 천장도배가 남아있지만 일은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그리고 상호 우호적으로 잘 마무리되고 있다. 구축아파트에서 늘 있는 골치 아픈 다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사건이 내게 조금의 힌트를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속에서 10년 전의 아들과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