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가 사는 법
"오베라는 남자"는 한동안 스웨덴 작가의 책이 인기를 끌던 시기에 알게 되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책 표지가 너무 흡사해 같은 작가인 줄로 알았더니 출판사의 상술이었다. 아들 녀석이 비슷한 부류의 책을 좋아해 예전에 사주었지만 시간을 내어 읽어보지는 않았다. 표지그림에 심술궂은 할아버지의 얼굴이 강렬하게 각인되었지만 딱히 손이 갈 정도의 책은 아니었다. 100세 노인을 읽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런데 아이는 그 책을 유독 좋아했고 동명의 영화까지 찾아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어제저녁 허무하게 주말을 넘기며 월요일이 되기 전에 무어라도 하고 싶어 OTT로 동명의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할 형편에다가 전날 잠을 설쳐 피곤했지만 나는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이 영화를 다 보고서야 잠에 들었다. 할리우드에서 톰 행크스를 앞세워 리메이크한 "오토라는 남자"를 이미 보았지만 스웨덴 원작영화를 보아야 한다는 아들의 말에 이끌려 보게 된 이 영화는 원작의 힘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줄거리는 거의 판박이 었지만 미국영화와는 사뭇 달랐다.
오베의 이야기는 흡사 한국의 드라마를 보는 듯 기구한 주인공의 스토리가 눈길을 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철도노동자로 근근이 살아가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오베는 자동차(특히, 사브)에 진심인 아버지 덕분에 자동차를 사랑하는 아이로 자란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아버지와 나름대로 행복하게 생을 꾸리던 오베는 아들의 성적표를 보고 신이 나서 자랑을 하던 아버지를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긴 집마저 불에 타 잿더미가 된다.
오갈 곳 없어 한밤중에 빈 열차에서 잠을 청한 오베는 뜻밖에 평생의 반려자를 그곳에서 만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열심히 삶을 개척하지만 임신한 아내가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고 하반신 마비가 된다. 그래도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오베의 아내는 천신만고 끝에 교사가 되고 문제아반을 맡아 그들을 훌륭하게 키워낸다. 이 얼마나 완벽한 신파의 스토리란 말인가? 나는 40여 년 전에 5월마다 TV에서 반복해서 틀어 준 "엄마 없는 하늘 아래"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뱃속의 아이를 잃고 상심했던 부부는 다시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지만 아내가 58세라는 한창나이에 암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뜨고 아내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베는 43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통보를 받는다. 그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내의 곁으로 가는 것뿐이다. 이웃들은 심술궂은 그의 눈에 모두 형편없어 보이고 도대체 되는 일이 없던 그의 인생은 새로 이사 온 앞집 부부를 만나면서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잔뜩 뿌렸지만 이 드라마의 전개는 참으로 전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여느 신파와 다르며 여느 휴먼스토리와 다르고 여느 해피엔딩과도 다르다. 아들 녀석이 이 영화와 원작에 빠진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두 가지가 떠올랐다. 오베는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인 팔자를 타고났지만 자애로운 아버지와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고 그로 인해 비뚤어지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먼저 떠나보내고 상실감으로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끝까지 붙잡는다.
오베의 기구한 운명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아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오베의 삶에서 희망을 찾았을 아들이 보였다. 오베는 사브를 사랑하는 아빠를 그리며 평생 사브시리즈로만 차를 바꾼다. 나와 아들은 자동차로 소통한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이제는 40년 된 올드카를 구입해 주말마다 드라이브를 한다.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를 켜고 새벽을 달린다. 아들은 오베를 보며 자신과 내가 떠올랐던 것이다.
우울증이 많이 좋아진 아들은 여전히 한 주가 시작되기 전 일요일 오후를 힘겨워한다. 이유 없이 가라앉는 아이를 데리고 외제차 전시장이 즐비한 스타필드 하남에 다녀왔다. 아이는 가는 내내 말없이 음악만 들었는데 오는 내내 신나게 떠들었다. 그렇게 겨우 한주를 마감한 나는 밤에 이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오베의 아내가 남편에게 건넨 대사에 꽂혀 버렸다.
"죽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버텨야 해"
나는 지금 죽을 만큼 버티고 있는 걸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