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언젠가부터 내가 직장생활을 견뎌내는 기준은 "not too bad"였다. too bad 하지 않으면 견뎌야 하는 곳이 직장이었다. 52년의 삶에서 24년을 too bad 하지 않다는 이유로 버티고 있다면 그 삶은 망한 거다. 그래서 잠시 내 24년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13년간 다섯 곳의 직장을 다녔고 지금은 무려 11년 동안 여섯 번째 직장에 몸담고 있다. 이 직장을 유난히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이유는 앞의 다섯 곳보다 여러모로 나은 근무환경이라는 것과 이제 함부로 아니 절대 이직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된 탓이다.
코앞에 다가온 추석연휴를 맘 편히 즐길 수 없을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에 한가하게 직장인의 삶을 운운하고 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문제가 결론이 나야 서둘러 밀린 일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지쳐있었다. 24년간 벗어나고 싶은 공간에 묶여 살았다면 지치는 걸 떠나 살아있는 게 더 신기한 일인지도 모른다. 철창에 갇혀 평생을 사는 동물원의 삶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탈이 나고야 만다는 면에서 닮아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최소 10년 이상 아니 연금소득이 생기는 날까지 돈을 벌어야 할 것이고, 그 또한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과 현재의 내 삶이 치환 가능할 만큼 나에게 직장에서의 소득이 절실한 건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나의 가족에게만큼은 절실한 것이 맞았다. 그런데 나는 10년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반면에 이렇게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있으니 내가 현재 그럭저럭 지낼만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명확해졌다.
나는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되어 있고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주변의 간섭이 딱히 없다. 적어도 나는 존중받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직장에서의 근무환경은 not too bad가 아니라 so-so를 넘어서 not bad 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힘겨운 이유는 이 일이 내게 썩 맞지 않거나 이제 이 일을 감당하기에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not too bad 한 직장을 꾸역꾸역 버텨낸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3년 차에 이직을 해 왔던 것이다.
지금의 직장에서 11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최악을 면한 정도가 아니라 나름 괜찮은 조직이었던 것이 맞았다. 적어도 직장인으로서 나에게만큼은 그랬다.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이 환상적인(어떤 관점에서는) 직장을 나는 그만두고 싶다. 그런데 나의 둘째는 여전히 아프고 나의 아내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나는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벌어야 하고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내 아이를 지켜내야 한다.
그러니 지금껏 떠든 모든 이야기는 공염불이요, 푸념이었다. 내가 지켜내야 할 것이 있기에 신은 나에게 이런 환상적인 직장을 연결해 준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게 은퇴는 없다. 9월 11일인데 이런 투정쯤 부려도 되지 않겠나... 내게 긴급구조는 없다. 나는 긴급하지 않다. 응급의료대란에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