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53일(2021. 6. 24)
4인 가구의 가사를 돌보다 보니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이 많다. 나는 제법 가사분담을 하는 남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주로 담당했던 청소와 아이들 챙기는 일을 제외하고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물론 그 많은 일들을 아내가 똑 부러지게 해내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고충이 그녀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빨래다. 고3, 중3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 빨래 거리가 많이 나오리라는 것은 예상 가능하지만 언제나 우리 집은 빨래 거리가 쌓여있었고 2주가 넘게 빨래통에 잠자고 있는 옷들도 부지기수였다. 그것을 답답해 하기는 하였으나 나는 남들보다 많은 여벌 옷을 준비하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이를테면 양말은 일주일을 쓰고도 절대 모자라지 않게 열 켤레 이상을 돌려 신었고, 출근할 때 입는 셔츠나 바지도 항상 2주 이상 돌려 입을 수 있도록 같은 옷을 여럿 장만하곤 하였다. 문제는 아이들의 옷에서 매번 사고가 나는 것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항상 그 문제로 다툼이 잦았고 나는 그들의 시끄러운 소란에 늘 불만이 많았다. 아이들을 챙겨야 했기에 항상 아내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던 나는 빨래 일까지 분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되는 말썽을 애써 외면하곤 했다. 세탁기 돌리는 일도 간혹 주말에 몇 번 해보긴 하였으나 자주 하는 일이 아니어서 이내 까먹곤 하였다. 그러나 휴직을 한 뒤로 낮시간에 집에 있는 이는 나와 반려견 호두뿐이기 때문에 당연스럽게 빨래는 나의 주 업무가 되었다.
세탁기 돌리는 법과 옷을 구분하는 법 등을 아내에게서 다시 배운 뒤로 나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첫 번째는 빨래 바구니... 아내는 항상 커다란 빨래 바구니에 모든 빨래 거리를 몰아넣고서는 매번 그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검은색 계열, 색깔 옷, 하얀 옷 그리고 딸아이의 무용복으로 구분을 하였다. 그리고 가장 많은 옷가지를 세탁기에 돌렸다. 건조대에 널 곳이 부족해 보이면 나머지 옷가지들은 다시 빨래 바구니에 구분 없이 모아졌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항상 찾던 옷은 여전히 빨래 바구니에 방치되기 일쑤였고 빨래의 선후가 구분되지 않은 채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나는 시스템 설계나 데이터 구조론을 배우면서(전공했다는 말을 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력임을 자인하지만) 모든 하드웨어 설계에는 선입선출(FIFO) 또는 후입 선출(LIFO)과 같은 논리 연산 또는 데이터 관리의 우선순위와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안다. 물론 이것은 컴퓨터 하드웨어를 공부하지 않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세탁 특성에 따라 빨래를 구분하고 원칙적으로 먼저 들어온 빨래 거리를 먼저 빨아야 한다. 그러나 변수도 있다. 즉 늦게 빨래통으로 들어온 옷가지 중에서도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것들 말이다. 예컨대 하루에 한 번씩 벗어놓기 쉬운 속옷, 큰아이의 무용복(레오타드)과 같이 자주 갈아입는 옷가지들 말이다. 여벌이 충분한지, 아니면 특별히 하루 이틀 사이에 다시 입어야 하는 것인지 등을 미리미리 확인해서 정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쌓여있는 빨래 거리의 분류별 양을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빨래 바구니를 4단짜리로 바꾸고 각 단마다 빨래의 배출량에 따라 위치를 나누었다. 가장 많은 양이 배출되는 색깔 옷은 제일 큰 아래칸, 흰옷과 검정 옷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칸, 그리고 반드시 냉수세탁을 해야 하는 딸아이의 무용복은 제일 윗 선반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여러 차례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내손으로 해결하고 나니 가족들의 만족도는 높다.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놓던 둘째가 나에게 이 빨래는 몇 번째 칸에 넣는 거냐고 묻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지만 게으름은 몸이 아니라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하기 귀찮아하면 몸이 바빠지지만, 생각이 부지런하면 몸의 수고는 한결 덜 수 있다. 나는 자타공인 귀차니스트이지만 몸의 귀찮음을 참기 어려워 지속적으로 생각을 돌리는 버릇이 있다. 머리는 힘들어도 몸은 편하다.
이야기가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다. 요지는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빨래를 해도 4인 가족이 매일매일 배출하는 빨래의 양은 감당하기 어렵다. 건조대를 제아무리 효율적으로 쓰더라도 부쩍 비가 잦은 변덕스러운 날씨에 하루 만에 빨래를 말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조기나 스타일러 같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한다. 그런데 내가 유감을 갖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나는 거창한 환경주의자도 아니고 옷감에 대하여 남다른 취향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조기가 싫다. 우리 집 다용도실에 건조기 놓을 자리가 부족한 것도 맞고, 거금을 들여 건조기를 들여놓을 만큼 여유로운 형편이 아닌 것도 맞지만 그렇게 아무리 궁색한 내 형편을 인정하더라도 나는 건조기를 거부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빨랫감에게도 사람처럼 햇볕을 쪼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햇볕이 갖는 무한한 장점을 무시하더라도 일광건조는 빨래에게도 빨래를 너는 사람에게도 더없이 풍요로운 감상을 선사하는 것 같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는 세상이라지만 그런 부동산 광풍에서 한발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집의 가장 큰 장점은 볕 잘 드는 남향이라는 것이다. 이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 그걸 제일 맘에 들어했는데 8년이 되어가는 시간 동안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지낼 때가 많다. 평일 낮에 한가로이 거실에서 햇살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주말은 이래저래 밖으로 돌 때가 많기 때문에 해 뜨고 해질 녘까지 온전히 햇살을 감당해본 적이 드물다. 그러다 때때로 그런 시간을 보낼 때 비로소 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 이 집 볕이 이렇게 좋았었지...
세탁기를 돌리는 일은 예전에 냇가에서 빨래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세상 편한 일이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설정만 맞춰주고 세정제나 섬유유연제를 넣어주면 그만이다. 마당에서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빨래판에 철썩철썩 빨래를 치대던 어머니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발코니 건조대는 고장이 나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지만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린 채 이리저리 요령 껏 좁은 건조대에 빨래를 너는 일도 수월하다.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요리조리 적당한 자리를 잡아 많은 양의 빨래를 한 번에 다 널고 나면 나름의 성취감도 있다. 이때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쨍쨍한 햇볕이다. 그 햇볕에 땀이 나곤 하지만 이렇게 널어놓은 빨래가 바짝 마를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이 입는 옷이 깔끔하게 소독까지 될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바짝 마른빨래를 걷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뽀송뽀송함은 군대에서 주말 낮에 눅눅한 군용 담요를 일광 소독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날 밤은 꿀잠이다. 어찌 건조기와 스타일러가 이를 대체할 수 있겠는가? 아내는 건조대 자리가 부족하면 급한 옷들(딸아이의 무용복)이나 수건, 양말은 안방 옷장 앞에 널어놓는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것들을 건조대에 말린다. 아내는 방안에 빨래를 널면 가습 역할도 한다며 이를 선호하지만 빨래는 누가 뭐래도 햇볕이다. 이것이야 말로 국 룰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꿈은 지금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지만 그 이유는 재테크나 투자목적이 아니다. 그저 은퇴 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누리고 싶은 마음에서고(나는 집돌이다), 그 꿈속에서는 아파트 발코니가 아닌 확 트인 곳에서 기다란 빨래 건조대를 늘어놓고 마음껏 빨래를 말리는 것이 추가되었다. 휴직 53일 차 나는 일광건조를 탐하고 있다.
오늘의 감상,
아내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빨래 몇 가지를 세탁기에 돌리고 나갔다. 이틀 전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고 그 자리에 새 빨래를 널다 보니 쨍쨍한 햇볕에 욕심이 나서 두 번이나 세탁기를 더 돌렸다. 주중 내내 비 소식이었으나 잔뜩 흐리기만 하고 시원스레 내리지도 않더니 오늘 오전은 부쩍 햇볕이 좋았다. 그래서 우리 집 빨래건조대는 오늘 풍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