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50일(2021. 6. 21)
둘째 아이의 기말고사 시즌이 시작되었다. 보통의 중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치르는 시험이 그저 열심히 공부한 성과를, 혹은 그간의 학력을 확인하는 정도의 의미이겠지만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내 아이에게는 남다르다. 예체능 수험생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학과 내신성적은 대학입시에만 통용되는 수단이 아니었다.
특히 미술계열은 언제부터인지 학과성적이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났고 심지어 대표적인 미술 명문 홍익대는 비실기전형으로 미술 전공자를 뽑는다. 논란의 여지가 있고 찬반이 갈리는 쟁점이므로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미술전공으로 예고에 입학하려면 입학전형의 무려 60%를 내신성적으로 보기 때문에 적당히 학과 성적을 관리하지 않으면 이름깨나 있는 예고 입학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다.
계층 간 사다리가 무너지고 빈부격차를 비롯한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현상은 예체능계에도 예외가 없다. 물론 비싼 수업료와 각종 레슨비 등 여느 사교육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학비로 인해 어지간한 중산층 가정의 자녀도 함부로 시작하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각종 비용이 많이 투명해지고 현실화되었지만 예체능 전공생들은 전공과목 자체가 추가적인 교육비를 동반하기 때문에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쉽지 않은 전공을 선택한 둘째 아이의 진로는 아마도 무용을 전공하는 첫째의 경험이 없었다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흔쾌히 수용하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유독 학과 공부를 수월하게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며 적성과 취향에 맞는 일을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예체능을 전공하는 두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것은 몇몇 학업과 담을 쌓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이곳도 치열한 대한민국의 사교육 현장이며 그것이 단순히 실기전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교과목에 걸쳐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대학 정원은 넘쳐나지만 그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 역대급 사교육 금지 세대였던 나로서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예체능을 전공하는 아이들은 결국 전공실기와 교과 과외학원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는 스케줄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그 복잡하게 뒤바뀌는 스케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그저 경제적인 투자뿐만 아니라 부모 중 한 사람이 온전히 시간을 할애하여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집처럼 두 아이가 동시에 입시를 치르는 경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영어, 수학 학원이나 과외로는 전과목 내신성적을 관리할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실기 레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예체능 전공생들은 거의 초단위로 시간관리를 하지 않으면 어딘가 한 곳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일들을 중고생 아이들이 스스로 꼼꼼히 챙기고 관리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야무진 아이들이 아니라면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그런 쪽으로는 잼병인 우리 둘째에게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잔실수가 많고 무언가를 터득하기에 더디었던 우리 둘째는 그런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사려 깊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녔고 또 엉뚱하고 독특한 성향으로 많은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무슨 일이든 똑 부러지게 해 내는 제 누나와는 많이 달랐지만 나는 농담 삼아 당시 유행하던 예능프로그램 코너를 따서 “비교체험 극과 극”이라 부르며 기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아들에게도 야무진 꿈과 목표가 있었고 그것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 크게 실망하고 좌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아이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부족한 것 외에 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거기에 만족하기보다는 그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고 더 멋진 인물로 거듭나고 싶은 강한 욕망을 지녔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 나도 깨달았다. 내가 아이를 나의 편의에 따라 해석하고 재단하려 했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 나의 착각은 자칫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내 아이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것이 비록 허황된 망상처럼 느껴지더라도 아이를 존중하고 그 꿈을 찾아가는 다양한 길을 같이 고민해 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힘들지만 아이의 꿈을 위해 돕는다. 내가 돕는 일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아이가 꿈을 실현하는 과정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 그 순간순간을, 그 과정 과정을 함께 겪어가는 것이다. 결국 이건 너의 몫이니 너 스스로 개척하고 감당해야 한다고 차갑게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고민해 주고 같이 찾아보고 곁에 있어 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없는 스펙을 만들어주고 없는 능력을 포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신이 꿈꾸는 존재에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함께 찾아주고 쉽지 않은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이번 기말고사도 그랬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일정을 함께 짜고 공부해야 할 부분과 지나쳐도 되는 부분을 함께 정리하고 요령을 몰라 힘들어하는 부분을 어릴 적 경험을 살려 알려주고, 잘 모르겠는 부분은 설명해주고 그리고 문제를 풀면 첨삭해주고...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쉽지 않은 일을 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난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거니까 말이다. 귀찮고 성가실 때도 많지만 작년 2학기부터 시작한 우리의 동행은 꽤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해, 고교입시에 내신성적이 반영되는 첫 번째 학기인 2학년 1학기를 우리 아이는 날려버렸다. 미술학원을 다녀야 해서 다니던 영어, 수학학원을 그만두고 대학생 과외를 붙여 봤지만 결과는 참담하였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학교는 문을 닫았고 아이는 길을 잃었다. 가장 중요한 첫 학기 성적을 한 번의 기말고사 시험으로 대체하게 되었고 잘 봐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에 시달린 소심한 우리 둘째는 첫날 시험을 망치고 반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내가 지금과 같이 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애가 공부에 게을렀던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고 그 참담한 결과에 깊은 좌절에 빠졌다는 걸 알고 나서다. 그 아이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으나 그것을 찾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었다.
작년 2학기부터 미술학원을 제외한 모든 과외, 학원을 그만 다니게 하고 나는 아이와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평소엔 서로가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 점수받기 용이한 수행평가 준비를 도와줬고, 시험 2주 전부터는 만사를 제쳐두고 아이의 시험 준비를 도왔다. 그 결과가 성공적인 것보다 나를 흐뭇하게 하는 것은 아이가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것이고, 그 아이가 어떤 과목을 좋아하는지, 어떤 과목에 강점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이의 내면을 읽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오늘의 감상,
내 아들은 별명이 많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데가 많았고 사랑스러워서 여러 가지 별명을 지어주곤 하였다. 그렇게 내가 지어준 별명 중에 하나가 “새우깡“이다. 여러 가지로 손이 많이 간다고 농담삼아 지어줬는데 이 녀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그걸 학교에서 공개하는 바람에 나는 담임선생님께 매우 실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우리 아들은 새우깡을 참 좋아했는데 심한 갑각류 알레르기로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온 뒤로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런 아들이 얼마 전 미술학원에서 새우깡을 그려왔다. 먹지도 못하는 그림의 떡을 참 그럴듯하게 그린 듯하여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