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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Sep 05. 2022

저는 이혼했는데 괜찮을까요?

1화, 그녀와의 첫 연락

진짜 힘들어 보인다.


부모님, 직장 등 당시 나와 자주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듣던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혼을 했다. 이혼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이혼 후 남은 뒷일과 감정은 이혼과정만큼 힘들었다. 그래서일까. 이혼 후에도 여전히 잠은 못잤고, 고민은 많았고, 꽤 많이 무기력했다.


나는 직장인이었고, 당연히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야 했다. 사실 이혼 자체를 한동안은 숨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늘 모든 상태가 얼굴과 건강에 드러나고야마는 나라서 '이혼 사실'을 사무실에 알릴 수 밖에 없었고, 차라리 말하는게 더 편할거라 생각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혼'을 말했을 때, 고맙기도 부담스럽기도 한 안쓰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이다. 내 이혼이 안쓰럽다고 내 힘듦이 늘 배려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더 감정을 살피고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혼 이후 어느 순간부터 나도 피폐해져 갔고, 주변에도 폐를 끼치고 있었다.


알고도 절제하지 못하는 우울함.


주변에서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남 눈치 볼 일이 많아졌다. 동시에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점점 더 사라져갔다.








미술치료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번 신청해 볼래요?


함께 일하는 팀원이 물었다. 요즘 짜증도 많아진 것 같고, 평소와 많이 달라졌다며... 나를 위해서도 함께 일하는 팀을 위해서도 어떤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건 이런 정보를 주는 것 정도라며,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권했다.


객관적으로 내 모습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로 전해 들으니 썩 달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거니까. 동료에게 전달 받은 공고문을 읽어봤다.


'우울한 사람들을 위한 미술 치료 프로그램' 


사실 공고문만 읽고서는 무엇을 하려는 프로그램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료가 추천해주기도 했고 무료라서, 일단 신청해보기로 했다.


프로그램 신청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잊고 지내는 사이 문자메시지가 왔다. 프로그램 신청이 접수되었고, 참석 가능하다는 연락. 그리고 언제 참석이 가능한지 묻는 연락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핸드폰에 저장된 공고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조건이 나에게 잘 들어맞았다. 아니, 맞는다고 생각했다.


※ 우울한 사람들을 위한 미술 치료 프로그램.
· 장소 : 사무실 근처
· 시간 : 가능한 시간
· 자격요건 : 2030 미혼 남녀


그런데, 공고문 맨 아래 '자격요건'을 읽는 순간 당황했다.


프로그램 참석 대상자의 조건은 ‘미혼’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엄밀하게 말하면 미혼이 아니었다. 이혼을 했으니까. 프로그램에 참석해도 되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주최측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주최하는 쪽에서 상의한 결과, 참여하시면 좋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렇게 나와 여자친구는 첫 연락을 주고받았다.








기록을 남기려고 기억을 되돌아보니 알 것 같다. 그때 그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나와 여자친구는 평생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인생은 예측불가함의 연속이구나. 지극히 평범한 하루 속에서 우연한 계기로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p.s. 나중에 이야기해보니 여자친구는 나의 프로그램 참석을 반대했었다고. 여자친구 생각대로 되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해당 글은 매거진 '한 번 이혼한 남자의 첫사랑'에 연재하는 글의 1화입니다. 글을 쓰게 된 이유와 앞으로 써내려갈 글의 주제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프롤로그를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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