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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Nov 05. 2022

가르치려 말고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독서모임 지정도서다. 유명한 강원국 작가의 책이지만, 그의 책을 처음 읽어본다. 강원국 작가가 말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어떤 글일까 꽤 궁금했다. 첫인상은 '놀랍도록 부드럽게 술술 읽힌다'였다. 단문을 좋아하는 편이라 더욱 그랬다. 글 한편도 두세 페이지로 짧다.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며 짧은 글 안에 첫째, 둘째, 셋째로 내용을 정리해 주어 간결한 느낌이 든다.


말을 잘하고 싶다면 '자신을 믿어라, 말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배려하라, 틀에 박힌 말을 무시하지 마라, 상대의 말을 끌어내라, 말뿐만 아니라 몸짓에도 신경 써라, 비서처럼 생각하고 비서같이 말하라, 말은 재능이 아니라 기술이다, 목소리를 가꿔라'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결국엔 좋은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p.126  말투는 나의 인격이며, 내일의 운명이기도 하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
p.201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득하는 사람이 누구냐이다. 당연하지만, 내가 평소에 믿고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는 쉽게 넘어간다. 설득하는 내용보다 설득하는 사람이 좌우한다.
p.221 결국 누가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 말하는 사람 자체가 논리의 증거가 되면 동의나 설득은 절로 이루어진다.
p.228 결국 기억에 남는 말을 잘하려면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에세이를 가장 좋아하는데, 에세이를 읽을수록 문장력이나 화려함보다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저자의 진심이 느껴지고 사람됨이 좋아 보이면 글도 좋아진다. 그런 면에서 강원국 작가의 '말을 잘하고 싶다면 좋은 사람이 되어라'라는 메시지에 동의한다. 글처럼 말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


제목과 주제, 내용이 일맥상통하는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어서 때마다 관심이 생기는 부분을 찾아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이의 말은 강물과 같아서"이다.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려 말고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일단 들어주면 아이는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한다. 그것을 잘 들어주면 된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인내심을 갖고 들어줘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어 한다. 인지상정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스스로 점점 잘하게 된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p.52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조카는 말을 느리게 하는 편이다. 저자의 말처럼 아이가 어떤 말을 하든지 끝까지 듣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듣다가도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래서 A는 B라는 거야?'라며 자꾸 중간에 끼어들게 된다.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흘려들을 때도 많다. 이렇게 아이가 말하기를 연습할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말을 또박또박하라고, 정리해서 말하라고, 큰 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라'고 요구한다. 아이가 마음 편히 말할 기회를 자주, 많이 주어야 스스로 점점 잘하게 될 텐데 말이다.


오늘 마침 둘째를 만났다. 학교에서 연극을 본 모양이다. 연극 얘기를 꺼내길래 강원국 작가의 글이 생각나서 집중해서 들었다. 마술사가 나오고, 시간을 돌리고, 친구들은 슬퍼했는데 자신은 별로 슬프지 않았다는 얘기를 두서없이 했다. 그럼에도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둘째가 계속 말할 수 있도록 열심히 들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 등장인물, 연극을 한 친구의 이름 등을 말하다가 나중에는 좀 정리가 되었는지 등장인물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뒤에 간략한 줄거리를 말해줬다. 사실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이야기를 하도록 기다렸다는 것, 그래서 아이가 평소보다 훨씬 많이 말했다는 것, 아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말하고 이야기를 끝냈다는 것이 좋았다. '왜 말이 느릴까, 왜 두서없이 말할까'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가르칠지를 고민하지 말고 일단은 열심히 들어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말 잘하는 사람은 많다. 논리적으로 주장을 잘 펼치는 사람, 감상적인 말을 잘하는 사람, 비판적이거나 해학적인 말을 잘하는 사람, 지적으로 해박한 사람, 정곡을 잘 찌르는 사람, 설명을 잘하는 사람, 아니면 이야기나 잡담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어느 유형인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을 더 잘해보자.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은 없다.  

<어른답게 말합니다> p.242


말을 잘한다는 것에 정답은 없다. 각자가 생각하는 '말을 잘한다'의 기준도 제각각이다. 강원국 저자는 이렇게 다양한 옵션 중에 자신이 잘하는 부분을 찾아 강점을 살리라고 권한다. 저자의 말대로 '말 잘하는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놓고 그것을 좇기 위해 힘쓰기보다는, 아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키울 수 있도록 잘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말이 느리다고만 여겼던 둘째는 무엇을 잘하는 아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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