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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Dec 16. 2022

내 안에 많은 빛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청춘’이라는 단어 때문에 책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오글거리는 연애가 떠올랐고, 요즘 연애 이야기는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막상 책을 펼쳐보니 첫인상과는 달랐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아름다운 문장과 작가의 내면에 반해서, 올해 출간된 개정증보판을 구입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김연수 작가는 <청춘의 문장들>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시인으로 등단했고, 1994년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단편 소설로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다양한 상을 받았으며, 대중음악평론가와 기자로도 활동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가지만, 이력보다는 책날개에 적힌 ‘작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독특하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낯선 지방의 음식, 그리스인 조르바, 나이가 많은 나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자리, 중국어로 읽는 당나라 시, 겨울의 서귀포와 봄의 통영과 여름의 경주, 달리기’이다. 싫어하는 것은 ‘소문을 알리는 전화, 죽고 싶다는 말, 누군가 울고 있는 술자리, 오랫동안 고민하는 일’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호불호를 표현할 줄 아는 진솔한 작가다.


<청춘의 문장들>은 서른다섯이 된 작가가 이십 대를 돌아보며 쓴 산문집이다. 젊은 날을 사로잡은 문장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인용하는 문장들은 이백과 두보의 시, 이덕무와 이용휴의 산문, 김광석의 노래 가사 등이다. 인용한 내용은 이해가 어려웠지만,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작가가 한 문장을 뽑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청춘의 문장들>은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글을 풀어내는 방식이나 담고 있는 이야기는 다르다. 김연수 작가의 글은 자기 치유를 위한, 내면을 향하는 글이라면 <쓰기의 말들>은 타인을 위한 글쓰기를 지향한다.


글을 쓰다 보면 외부로 향하는 글, 나의 이야기지만 사회를 담은 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머무는 글보다 외부로 향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면에 깊이 머물러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글이 더 좋다.  


'치킨 테이블 노블’이란 식탁에 앉아서 쓰는 소설이라는 뜻으로, 전문적인 소설가가 아니라 일반인의 처지에서 쓴 소설이 크게 인정받았을 때 붙이는 이름인 듯하다. ~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청춘의 문장들> p.60


계속해서 글쓰기를 이어가는 이유 또한 나 자신을 위해서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을 기록하고, 특정 순간에 드는 생각을 붙잡고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그 과정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 치유하는 글쓰기를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나로서는 작가의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처럼 꾸준히 나를 위한 글을 써도 되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청춘의 문장들> p.195


서른다섯에 쓴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마음을 두드린다. 작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저마다의 인생을 걷고 있는 이들이 공감할 만한 작고 소중한 에피소드가 자주 시선을 멈추게 한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김연수 작가의 빛나는 청춘, 결국 우리의 청춘을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만나게 되는 <청춘의 문장들>.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빛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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