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 Jan 14. 2023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고재욱

제목과 책에 실린 그림들이 참 예쁘다. 표현과 작가의 마음가짐도 따뜻하고 훈훈하다. 이런 분위기와 달리,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이 생활하는 요양원의 일상과 잦은 죽음 등이 주요 내용이다. 고재욱 작가의 섬세하고 따뜻한 표현으로 술술 읽히지만, 치매와 죽음이라는 주제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치매를 앓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치매 환자들이나 보호자, 요양보호사의 입장에 온전히 감정 이입을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거리감을 느끼며 글을 읽어나갔는데, 거리감 때문인지 힘들고 마음 아픈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괴로움이나 슬픔이 아주 크지는 않았다.  

치매에 걸리게 되면 대부분은 딱 하나의 기억을 붙들고 남은 생을 보내는 듯하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감정은 후회, 그리움이다. 가장 최근 기억부터 잃게 되어 오래전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막내를 업고 밭에 나갔다가 눕혀놓은 막내가 농약이 묻은 감자를 먹고 죽은 일, 매일 5살 때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할아버지, 새 옷을 입히지 못한 막내딸이 마음에 남아서 매일 막내딸을 위한 옷가지를 모아 유품을 준비하는 할머니 등등. 

저마다 지니고 있는 한 가지 기억을 들으며, 나에게는 어떤 기억이 남을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20~30대를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안고 보냈다. 감정이 골이 매우 깊어서 죽을 때까지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여긴 적도 많다. 다행히도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작년에 깊은 원망을 내려놓았다. 만약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내려놓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을 단 한 가지 기억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니까, 마음에 걸리는 감정들을 무시하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잘 해소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억울했던 일이 떠올라, 이제는 나를 기억하지도 못할 사람을 상대로 원망을 쏟아놓을 때가 있다. 또는 어떤 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전하지 못해 곱씹을 때도 있다. 그런 감정들은 상대와는 상관없는 것들이다. 나 혼자 과거로 돌아가, 내가 만든 허상의 누군가에게 원망과 억울함을 씌우며 되새김질하고 있을 뿐이다. 가끔 그런 감정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저 넘기고 말았는데, 다음에는 꼭 내 마음을 다독여주고 나를 이해시켜 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따뜻한 분위기 속에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저마다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생각에 빠지게 한다. 꼭 하나만 남길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이 좋을지, 부모님이 치매를 앓게 되신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좋은 요양원은 자주 찾아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이라는데 과연 나는 얼마나 자주 찾아갈 수 있을지 등등 현실적인 문제도 고민하게 된다. 

또한 치매와 치매 환자, 요양보호사의 현실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라고 한다. 하지만 거리에서 치매 환자를 보는 일은 무척 드물다.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장애인이나 치매 환자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기보다 격리시키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 때문이 아닐까. 기억을 잃은 치매 환자라고 해서 감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치매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그래서 꼭 한 번은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작가의 이전글 오래오래 기억될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