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Y Dec 08. 2023

백구두 신은 아기 고양이

- 쫄쫄이와 쫑쫑이 이야기 (2)

    토요일 아침 출근길, 집 앞 화단 근처에서 작은 새끼 고양이를 만났다. 온몸이 온통 까만데, 마치 하얀 백구두를 신은 듯 발 네 개만 하얗다. 남편과 내가 화단 옆을 지나 주차장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도망도 가지 않고 남편 근처까지 다가왔다. 남편은 "집을 잃었나… 야생은 아닌 것 같은데... " 하며 몇 번 뒤돌아서 녀석을 바라보다가 "집에 가져다 둘까" 혼자 말을 한다. 그러나, 출근 길이 바쁜 우리는 고양이 따위는 금새 잊어 버리고 말았다.


    오후에 퇴근해서 쫄쫄이 쫑쫑이를 끌고 수영 레슨을 다녀왔다. 쫄쫄이는 새끼 돌고래처럼 수영장을 휘젓고 다니고, 통통한 쫑쫑이는 조금씩 혼나가며 평영을 시작했다. 나는 헥헥거리며 자유형 배영 연습을 했다.


    수영 레슨을 끝내고 오는 길에 쫄쫄이가 ‘캐츠 앤 독스’ 영화를 보러 가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시내 백화점 부설 영화관에서 마침 상영 중이라 후다닥 준비해서 네 식구가 간만에 영화를 보러 나섰다. 아이들과 남편이 먼저 집을 나서고 뒤따라 나갔더니, 아침의 그 백구두 애기 고양이를 남편과 아이들이 둘러 싸고 있다. 


    녀석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듯, 쫄쫄이 발 사이로 들어 가더니 아예 쫄쫄이 샌들 위에 가만히 들어 눕는다. 쫑쫑이가 가만히 등을 긁어 주니 일어나서 뱅뱅 돌다가 길 위에 가만히 드러눕는다. 피곤한 듯 배가 홀쭉하다. 얼굴이 내 주먹 만할까, 아직 애기다. 얼마나 된 녀석일까?


    남편이 집에 가서 우유를 가져 오라 기에 우유와 참치 통조림을 조금 덜어서 들고 나왔다. 현관 입구 서늘한 데로 안고 들어와서, 우유그릇을 놓아주었더니 조금씩 먹다가 뒤로 물러 선다. 참치를 조금씩 떼 주었더니 아주 맛나게 먹는다. 네 식구가 둘러 앉아서 참치를 다 먹이고 우유를 조금 더 먹였다. 아이들이 집에서 기르자고 난리가 났다. 난감하다. 데려다 놓으면 결국은 유모할머니 일이 될 터이다. 그래도 작고 귀여운 녀석이다. 백구두 발이 참 작다.


    남편이 아이들을 달랬다. 집 잃은 고양이인 것 같은데, 곧 주인이 찾아 갈 거라고. 우유 그릇을 화단 사철나무 밑에 놓아두고, 백구두를 안아서 우유 그릇 밑에 앉혀 놓고, 뒤돌아보며 떠났다. 모두들 발이 안 떨어진다. 녀석은 쫄래쫄래 우리를 따라오는 듯 하더니 자동차 밑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쫄쫄이는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집에 데려다 놓자고 조른다. 
 저러다 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멀리서 다시 돌아보니, 자동차 아래 내 주먹만한 백구두 얼굴이 보이는 것도 같다. 


    교통난과 주차 난을 뚫고 영화관에 갔더니 우와~ 왠 사람이 그리 많은지, 8개관 동시 상영인 영화관 앞은 완전히 돗데기 시장이 저리 가라다. 표는 이미 매진이 되었고, 기다려서 9시 20분에나 볼 수 있겠다. 할 수 없이 일요일 표를 예매하고 돌아왔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내내 백구두 이야기이다. 백구두라 공식적인 이름도 짓고.. 쫄쫄이는 남자애다 하고, 쫑쫑이는 여자애다 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들여다봤더니 우유 그릇이 그대로 놓여 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쫄쫄이는 일어나자 마자 백구두 안부가 궁금해 점호를 나가더니 빈 손으로 돌아왔다. 나는 한편으로는 그 녀석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뒷감당이 걱정된다. 마음이 복잡하다.
 

    집 잃은 쬐그만 녀석. 자동차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고, 요즘 들어 하루걸러 비가 내리는데, 그 쪼그만 백구두를 신고 어디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과 잠잘 곳을 구할 것인지. 우리 네 식구는 들락날락하며, 사철나무 아래를 몇 번이나 오고 가 보게 되는 것이다.


                                                                                                                (2001년 여름 어느 날)

                                                                                                            (대문 사진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여기 풀이 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